‘현실논리’와 ‘상황논리’가 만들어 내는 부조리 속 인간군상의 실체
이번에 이야기할 책은 이혁진 작가의 소설 <관리자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이혁진 작가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한 것은 작년. <사랑의 이해>였습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는 어림짐작으로 단순한 남녀 관계와 사랑 이야기이겠거니 했습니다만, 이 시대 계급 문제를 청춘들의 사랑으로 솜씨 좋게 덧칠하여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숨어 있는 색감이 진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깊은 인상을 남긴 첫 만남은 호기심으로 이어져 그의 데뷔작인 <누운 배>도 이어 봤습니다. 중국의 한국 조선소에서 진수식을 끝낸 배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시작하는 이야기 속에 조직의 부조리와 관료주의에 익숙해져 누워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그의 신작 <관리자들>입니다.
모든 것은 멧돼지 때문입니다.
도로 공사 현장에서 인부들은 불평합니다. 촉박한 공사 일정에 날씨는 점점 추워져 일은 힘들어지는데, 식사마저 부실하게 제공되니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사의 총책임자인 소장은 식재료를 보관하는 비닐하우스에 멧돼지가 출몰하여 다 망쳐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실은 이 모든 것은 비용절감을 위한 소장 지시입니다. 멧돼지는 핑계이고 가상일 뿐입니다. 이때 현장 작업에 적응하지 못하는 선길이 멧돼지 보초병이라는 이해되지 않는 임무를 맡게 됩니다. 허구의 멧돼지를 지키던 실존의 선길은 아들의 수술 때문에 며칠 동안 현장에서 자취를 감춥니다. 얼마 후 돌아온 선길은 달라져 있었고,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되고 현장도 달라지게 됩니다. 사고로 인해 숨겨진 병폐와 부조리가 터져 나오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관리"의 이름으로 기생하는 인간들의 도덕과 윤리의 원초적인 고민이 독자에게 던져집니다.
소장은 "관리"라는 이름으로 "지배"하는 자입니다.
그는 현장을 효율적으로 "관리"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거짓과 선동을 서슴지 않습니다. 폐처분당한 돼지고기로 회식하는 것도 현장의 안전장치를 생략하는 것도, 모든 것이 그에게는 유연한 "관리"로 허락됩니다. 소설은 하나의 사건이 "관리" 됨으로 다른 사건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악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더 섬뜩한 것은 소설 속 소장의 인물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리자" 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책임은 지는 게 아니야. 지우는 거지. 세상에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거든. 어디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멍청한 것들이나 어설프게 책임을 지네 마네, 그런 소릴 하는 거야. 그러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자기 짐까지 떠넘기고 책임지라고 대가리부터 치켜들기나 하거든. 텔레비전에서 정치인들이 하는 게 다 그거야. 책임을 지는 게 아니라 지우는 거, 자기 책임이라는 걸 아예 안 만드는 거. 걔들도 관리자거든. 뭘 좀 아는.”
"꼼수 부리지 말아라. 결국에는 돌아오게 되어있다."
예전 회사의 본부장님이 회사를 떠나시면서 저에게 하셨던 말씀입니다. 그 당시 저는 회사의 중간 관리자로 막 시작한 때라 본부장님이 특별히 전해주고 싶으셨던 마음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때보다 나이도 먹고, 회사에서 위치도 꼰대 울타리에 들어간 지금까지도 문득문득 생각납니다. 상식과 효율이 부딪힐 때, 도덕과 성과가 마찰을 일으킬 때, 개인과 조직이 엇갈릴 때, 나를 중심에 놓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정신과 행동을 고쳐 매게 합니다. 이 책 <관리자들>은 눈앞의 문제적 상황을 빠져나오기 위해 잠깐 정도에서 벗어나 지름길을 선택하면 길을 잃게 된다는,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을]
우리 시대의 현실적 이야기를 좋아하시는 분들.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선택의 고민을 경험하고 싶으신 분들.
[이런 분들은 한번 더 생각을]
부조리한 상황은 현실 경험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빌런의 존재만으로 답답함을 느끼시는 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