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자동차 여행기
“노르웨이에 같이 갈래?”
직장 생활을 길게 버티며 다람쥐가 도토리 모으듯 쌓아둔 적금으로 은퇴하고 호호백발이 되면 가는 여행의 종착지라고 생각했던 노르웨이에, 신랑이 같이 갈 생각이 있냐고 무심하게 물어본 게 작년 3월쯤이었다. 팔다리 성하고 검은 머리 무성할 때 갈 수 있을 거라고 엄두도 못 냈던 여행지였다. 이미 두 달 전쯤 이탈리아 여름휴가 표를 결제해둔 상황이었지만, “여름휴가 두 번 간다고 설마 회사에서 자르겠어? 콜!”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8월 성수기의 노르웨이 휴가는 항공시간도, 비용도, 루트도, 목적지도 생각해 볼 것 없이 ‘노르웨이’라는 이름 하나로 결정됐다.
노르웨이의 무엇이 나를 홀렸을까. 여행지를 결정하는 뇌의 알고리즘은 무엇이었을까. 노르웨이로 8월의 행로를 결정한 뒤, 열어본 머릿속 노르웨이 폴더에 저장된 파일들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북유럽, 신선한 연어 산지, 빙하, 겨울왕국, 피오르드, 대자연, 바이킹, 친환경, 선진적인 복지제도, 살인적인 물가, 요즘 인스타그램에서 공구를 많이 하던 노르딕 슬립 베개 정도였다.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성이 적다는 계산의 벽에 막혀 결심을 실행할 의지나 특별한 동인 없이 철제 캐비닛 구석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다.
머릿속에 노르웨이와 관련된 파일들은 제각기 흩어져 보관되어 있다가, 때때로 어떤 경험들을 거치며 형태가 만들어져 살이 붙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며 때를 기다렸다. “노르웨이에 갈래?”라는 신랑의 말 한마디가 낚싯대 끝 바늘이 되어 내 마음속에 던져졌고, 미끼도 없는 바늘에 노르웨이에 가고 싶다는 무의식이 따라왔다. 울창한 숲과 대 자연을 보고, 북유럽 디자인 감성을 구경하고, 복지 선진국가와 친환경 문화를 직접 보고 싶다는 어렴풋한 욕망이 줄줄이 소시지처럼 낚싯줄에 달려 올라왔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내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중국어 전공자셨다. 1990년대는 중국과 수교도 이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어가 지금처럼 G2로 각광받으며 인기 있는 전공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삼국지에 황하 강에 대한 구절을 읽다가 문득 중국에 가서 황하 강에 손을 담가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전공을 정했다고 했다. 선생님이 하셨던 중국어 수업의 한 마디도, 선생님이 해 주신 많은 좋은 말도, 심지어 선생님의 존함도 기억은 나지 않지만 황하 강을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가 인생의 항로를 바꿔버렸다는 이야기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 내가 어느 대학에 지원한다고 하자 합격이 쉽지 않음을 암시하며 반대하고 싶었던 선생님의 표정은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인생의 선택들이란 꼭 점철된 당위성과 합리적인 이유의 귀결이 아닐 때도 있다.
선생님의 전공 선택처럼, 나는 노르웨이를 떠올렸을 때 아마도 다음 기회는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무지에서 비롯된 신비감이 합쳐져 여행지를 선택했다. 뇌의 알고리즘을 되짚어 보며 이러저러한 추론으로 노르웨이행을 결정했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노르웨이라는 이름 하나로 이유는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