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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ug 01. 2021

3. 노르웨이 여행 렌터카 루트 정하기

거꾸로 강을 거슬러 가는 연어가 된 기분으로

 스무 살 영국살이부터 할머니와 함께 하는 대가족 프랑스 여행, 깨가 아니라 장을 지지고 볶는 우리 가족 서유럽 자동차 일주까지, 나름 스스로 해외여행을 15년 넘게 좀 다녀본 만렙 고수 여행자라고 자부했다. 그런데 노르웨이에 여행 루트를 정하려고 검색을 시작했을 때 거꾸로 강을 거슬러 연어의 나라에 온 것처럼 다시 여행 초보 레벨로 돌아온 것 같았다.      


 보통 여행지를 정하고 나면 가장 먼저 비행기 표를 사고, 여행 가이드북을 여러 권을 사서 추천 루트 중에 가보고 싶은 곳을 선택하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며 방문할 도시를 고르고, 거기에 맞게 각각 며칠을 머물지를 정하고 호텔과 이동 편을 짰다. 숙소가 정해지면 식당과 쇼핑리스트와 액티비티와 정보를 찾는 편인데 대형 서점에 가보니 노르웨이는 우리나라에 출판되는 단독 여행 가이드북이 없었다! (2019년 기준. 지금 찾아보니 ‘노르웨이’를 검색했을 때 제일 먼저 나오는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이다. 현재 2권 정도의 노르웨이 책이 검색되는 것을 보니, 니치 마켓을 알아보고 책을 쓴 작가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환영 대환영!!) 


 여행 가이드북들이 보통 북유럽 3~4개국으로 패키징 되어 묶여있었고, 그마저도 덴마크, 스웨덴의 인기에 “노르웨이? 흠.... 그래 뭐 너도... 한번 껴줄게”라고 묻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이돌 그룹에서 실력파 보컬과 스웨그 넘치는 랩 담당 멤버가 전면에 나서고, 어딘가 멋지고 매력 있지만 조용한 노르웨이는 그룹에 숫자를 채우려고 들어 있는 여행업계의 깍두기 멤버 같았다. 게다가 수도인 오슬로와 주변 대도시에 대한 정보를 제외하면, 릴레함메르라는 도시에서 출발하는 우리에게는 도움이 안 됐다. 요즘 친절하고 오지랖 넓은 우리나라 민족 특성상 웬만한 특이한 해외여행지라도 블로그에 로컬 맛집 식당과 가는 길, 추천 메뉴까지 블로그에 나와 있는 세상인데, 노르웨이는 한국인들의 레이더 범위에 아직 들어오지 못한 듯했다. 덕분에 여행 준비 시작부터 어딜 파야할지 모르겠는 경우는 또 오랜만이었다. 누군가의 루트, 검증된 루트를 따라가기란 불가능하겠구나, 싶었다.      


대중교통이냐 렌터카냐무엇하나 쉽지 않네

 비행기 표를 사고 다음 고민은 대중교통과 렌터카 사이에 있었다. 대중교통도 없진 않지만 노선이 아주 다양하지 않고, 렌터카도 저렴하지는 않아 여러모로 결정이 쉽게 나지 않았다. 차를 빌리겠다는 결심이 쉽사리 서지 않았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노르웨이가 워낙 광대하고 넓어서 가 볼만한 곳에서 다른 유명한 곳으로 가려면 6~7시간 이상씩 운전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 오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는 수도 오슬로를 제외하고 서쪽 바닷가에 인접한 베르겐, 플롬, 스타방에르, 알레순, 트론헤임 정도다. 일주일 정도 머무를 우리가 이 도시를 다 둘러본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출발지 릴레함메르에서 베르겐까지는 6시간 20분, 베르겐에서 스타방에르는 4시간 40분, 베르겐에서 북쪽 알레순트로 간다 해도 7시간 22분이 걸린다. 그것도 쉬지 않고 달린다는 전제하에. 유명하다는 일곱 자매 폭포를 보고, 가는 김에 베르겐에 잠깐 들려 해산물 시장에 가볼까? 이런 루트가 말이 안 되는 스케일의 국토인 것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갔을 때처럼 피엔자에 갔다가 오는 길에 몬테풀치아노도 들려볼까? 하는 운전법이 통하지 않았다. 보통 유럽여행에서 베이스캠프 숙소를 정하고 며칠 머물면서, 하루는 두세 시간 정도의 교외 도시나 지근거리에 가볍게 다녀오는 식이 북구 지형에선 통하지 않았다. 바이킹들의 나라, 바늘로 찔러도 피가 안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오슬로에 있거나 어디로 끝까지 나아가거나, 둘 중 하나였다. 후, 이런 매력적인 북구인들 같으니.     


둘째는 렌터카가 저렴하지 않았다. 바로 두 달 전에 다녀온 이태리 여행에서 작은 포드 자동차를 일주일 빌리는데 15~20만 원 정도였다면(보험 풀 커버리지 포함), 유사한 차량이 노르웨이는 60만 원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르웨이는 너무나 환경을 사랑한 나머지 렌터카 숫자 자체를 제한하고 있었다. 렌터카로 여행하려는 수요는 꾸준하고 공급은 제한되어 있어 가격이 올라간 것이라고 한다. 정말이지, 제주도에서 넘쳐나는 렌터카를 보고 또 빌려 본 한국인으로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이유였다. 나중에 노르웨이에 발을 딛고 나서야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던 그들의 환경 사랑은 이해가 되었지만.      

셋째는 나는 장롱면허라 운전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신랑에게 부탁하고 의존하고 의탁해야 하는데, 그렇게 장거리 운전을 하게 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아무리 “이동도 여행인 노르웨이”라지만, 한 사람이 장거리 운전을 매일 하는 부담은 피하고 싶었다. 비도 자주 오고 길도 좁아 산길을 갈 때는 마주 오는 화물차와 옷깃 스침 수준의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을 해야 한다는데, 나 같은 운전 미숙자가 핸들을 잡으면 황천길이 수차례 매직아이처럼 보일 것이 뻔했다. 운전을 좋아하는 신랑이라도 대중교통에 몸을 맡기면 낮잠도 자면서 지도를 보며 길이 맞는지 긴장할 필요도 없이 쉬엄쉬엄 갈 수 있을 텐데. 운전도 못하는 내가 차를 빌리자고 하는 게 어째 돈도 없고 얻어먹는 처지에 일식은 오마카세지 라고 하는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넷째, 노르웨이에서는 기름값도 주차료도 통행료도 무엇도 싸지 않다. 이쯤 되면 심히 궁금해진다. 도대체 노르웨이는 무엇이 저렴한 것일까? 결국 이런 단점들을 감수하고라도 결국 렌터카를 선택한 것은, 또 다른 옵션인 대중교통의 가격 경쟁력도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전문용어로 도찐개찐, 국문학적으로 ‘도긴개긴’이라는 표현 그대로였다. 대중교통이라고 가격이 대중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오슬로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베르겐까지 횡단하는 기차는 운행 6시간 50분, 비용은 1인 15만 원. 왕복이 아니라 편도 가격이 대략 그랬다. 노르웨이의 대표적 여행지를 둘러볼 수 있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넛쉘투어’가 있다. 오슬로에서 뮈르달이라는 도시까지 기차를 타고(4시간 반) 이동해 플롬까지 기차를 타고(1시간 반), 유람선을 타며(2시간) 피오르드를 구경한 뒤 구드방엔까지 가는 요 노선이 바로 30만 원 정도에 팔린다. 노르웨이 관광청이 만들었다는 루트가 그랬다. 뭘 해도 비싸다면 이동하는 시간이나 우리 마음대로 정하자는 생각으로 렌터카로 결정을 내렸다. 땅땅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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