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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cilia de brunch Aug 02. 2021

4. 연쇄 살인마급 물가에 대비하는 여행객의 자세

유럽 물가가 살인적이라면 노르웨이는 연쇄살인마급

 노르웨이 여행을 준비하며 물가에 대해 알아볼수록 등골이 서늘해졌다. 북유럽 물가가 살인적이라는 소문은 익히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악명이 높은 노르웨이는 13일의 금요일 연쇄살인마쯤 되는 걸까. 노르웨이 사람들도 주말에는 인접국 스웨덴에 가서 장을 보고, 가구도 사 온다니. 처음엔 도대체 얼마나, 무엇이, 왜 비싸길래 다들 그럴까 사실 감이 잘 안 왔다. 두 사람이 외식을 하고 맥주 한잔씩 곁들이면 10만 원은 기본이라고 할 때는 서울보다 조금 더 비싼 정도려니 했는데, 생수나 콜라 500ml가 5~6천 원, 버거킹 세트가 3만 원이라는 블로그 글들을 보니 정신이 바짝 들었다. 살인적 물가에 살해당하지 않으려면 이쪽에서도 단단히 준비해 가야겠다는, 살인마에 방어하는 자세로 여행 준비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이것은 정당방위다.     


 원래 해외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면 여권과 신용카드만은 꼭 챙기고, 잃어버린 게 있으면 가서 돈으로 해결한다가 나의 여행 모토였다. 준비한다고 해도 분명 집에 두고 온 물건들이 생기게 마련이고 웃돈 조금 더 주고 현지에서 구입하면 된다는 태평한 생각으로 잘 지냈지만 노르웨이에서는 지갑에 구멍 내는 지름길이었다.  

    

 여행 2주 전, 사가야 하는 물건들을 고민하며 이것저것 미리 배송 주문을 하고 짐을.... 싸려고 했으나 사실 여행 바로 전날까지 회사 일이 노르웨이 만년설만큼 단단히 밀려 있었다. 패킹이 늦어진 변명을 조금 더 하자면, 노르웨이의 여름엔 어떤 옷을 챙겨가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보통 일교차가 조금 있는 곳이라면, 반팔 옷을 위주로 챙기고 아침저녁에 걸칠 카디건이나 경량 패딩을 한두 개 가져가면 된다. 노르웨이는 8월이라도 초겨울처럼 챙겨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기온은 9~15도인데 비도 자주 온다고 하니 어떤 날씨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결국 큰 트렁크는 반팔 티셔츠와 핫팬츠, 7부 트레이닝 복, 긴팔 청자켓과 경량 패딩, 사진 찍기 좋은 원피스에 니트까지, 이도 저도 아니라서 딱히 믹스매치 하기도 난감한 장단의 옷 꾸러미로 가득 찼다. 노르웨이에 가 보니 너무 추워서 옷을 더 사 입기까지 했으니, 옷 짐 꾸리기는 대실패였다.   

   

  의류에서 방어전은 실패했지만, 식음료 분야에서는 그래도 선방을 거두었다. 텀블러도 두 개나 챙겼다. 하나는 물, 하나는 커피를 야무지게 마실 계획이었다. 커피 한잔에 7~8천 원은 기본이라니, 공유 오라버니가 광고하는 인스턴트커피 가루도 넉넉히 담았다. 그 외에 여행 준비물의 50%는 인천공항 편의점에서 해결했다. 그마저도 항공사에서 체크인 5분 남았다(는데 네놈은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바로 안 오면 우리는 널 버리고 가버리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한)는 탑승 카운터 독촉 전화를 받으며……. 햇반과 자장라면을 결제했다. 살인에 대비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치고 꽤나 허술한 대응이 아닐 수 없었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누룽지도 가져가서 쌀쌀한 날씨에 아침식사로 요긴하게 먹었다. 누룽지는 부피도 차지하지 않고, 냄비만 있다면 물 부어서 10분 정도 끓이면 되니 여행이 3일을 넘어가면 꼭 챙긴다. 환경을 사랑하는 북구인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일회용품을 줄이고자 집에서 쓰던 숟가락 젓가락도 챙겨갔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면세점에서 김치를 사봤다. 참나, 빨간 립스틱도, 붉은 블러셔도 아니고 홍삼도 아닌, 포장 비비고 배추김치 6팩을 샀다. 면세점에서 초장까지 사니 아주 화룡점정이었다. 초장은 많이 망설여지긴 했지만 연어회를 찍어먹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미리 주문해서 가져간 식량 대비책들은 현지에서 아주 훌륭하게 외식 비용을 줄이는데 공을 세웠다. 가루 된장국을 20 봉지나 가져갔다. 뜨거운 물만 부으면 얼추 비슷한 된장국 맛이 난다는 장점이 있었다. 옛날에 초등학교 급식 때 먹던 배추 된장국 맛이 아련히 떠오른달까. 단점은 여러 가지 맛을 샀는데, 맛이 차이가 없다는 거였다. 다 똑같았다. 그래도 간헐적 한식파(처음엔 이국적인 음식이 신기하고 맛있지만 해외에서 4일 이상 지내고 나면 한국 음식이 아련히 떠오르는 타입)인 신랑은 노르웨이에서 된장국을 먹을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노르웨이 준비물 가장 중요한 꿀팁★★★

 인터넷에서 찾아본 ‘노르웨이 준비물 꿀팁’ 중에서 제일 핵심적이었고, 꿀 오브 꿀이었으며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삼대가 부귀영화를 누리시길 기원하는 팁은 바로 오슬로 공항 도착 면세점에서 면세 맥주를 사라는 고귀한 말씀이었다. 많지 않은 노르웨이 여행 후기 중에, 단언컨대 내게는 무지개 형광펜 밑줄 쫙, 별표 세 개 ★★★ 팁이었다. 다른 것들이야 한국에서 사거나 안사면 그만이지만 맥주는 이야기가 다르다. 시내 마트에서도 맥주는 작은 캔 하나 기준 역시나 5~6천 원이다. 4개 만원은 택도 없는 소리다. 700ml 작은 병맥주가 1만 원을 넘는다. 고급스러운 장식이 있는 라운지 바가 아니라, 대형마트 가격이 그렇다. 금가루를 탄 것도 아니다. 당연히 나는 도착하자마자 면세점에서 노르웨이 맥주 6개 들입 2개, 총 12개를 샀다. 번들의 가격은 약 2만 원, 살수록 이득이다. 무거워도 맥주만큼은 이고 지고 가야 한다. 술을 많이 먹으려면.      


 청춘 배낭객처럼 기내에서 주는 각종 주전부리를 가방에 챙긴 것도 실로 오랜만이었다. 기내식에 서빙된 볶음 고추장과 조그마한 소금&후추, 참기름까지 야무지게 가방에 챙겨가는 여행은. 해외여행 갈 때 기내에서 주는 간식들을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가던 엄마가 생각났다. “가서 사 먹으면 되지~ 가방만 무거워지게 그런 걸 왜 챙겨?”라고 핀잔을 주면, 나중에 먹을 거라며 엄마는 개의치 않고 공돈 주운 표정을 하곤 했다. 카드 하나 달랑 들고 다니면서 사 먹고, 버리고, 남으면 남기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아끼는 게 궁상이 아니라, 결국 남으면 버려지고 쓰레기가 되는 것이었는데 어리석은 건 내 쪽이었다. 쿨한 척하며 엄마에게 핀잔이나 주던 20대의 나는, 노르웨이행을 앞두고 기내식 볶음 고추장이며 참기름을 챙기게 될 줄 몰랐겠지. 


사실 우산도 챙겨가는 걸 깜빡해서 5천 원이면 살 수 있는 메이드 인 차이나 우산을 굳이 굳이 노르웨이에서 2만 원이나 주고 샀다. 멍청 비용은 유난히 뒷맛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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