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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낀느 Jan 17. 2024

Drama, 나의 휴식이자 벗이라서

 

나도 몰랐다. 내가 이처럼 드라마에 탐닉하게 될 줄이야.  

    

내가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제주로 이주한 후이다. 

갑자기 넘치게 많아진 시간의 벗이 필요해서,

우울증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글도 써지지 않아서,

내 인생을 돌이켜 보기 싫어서,

한 시리즈를 택해서 하루 종일 누워서 보았다.

그런 시간에 보는 드라마이니 요란한 메시지를 담은 이야기나, 이혼과 불륜을 담은 답답한 드라마보다 따뜻하고, 달달하고, 웃음을 줄 수 있는 극히 대중적으로 빼어난 작품을 택했다.     


Grey’s Anatomy에 빠져들어 시리즈를 다 본 게 시작이었을 게다. 그 드라마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재미가 없어져 어디서 시청을 멈췄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메러디스 그레이가 나이 먹으니 보기 싫어졌을 것이다. 지금도 시즌 20을 하고 있었다. 

그 후 의학 드라마에 호기심과 재미를 느껴 온갖 드라마를 다 찾아보았다. 아마 국내에 나온 의학 드라마는 몽땅 다 보았을 것이다. 2007년 뉴하트와 하얀 거탑부터 오래된 드라마와 의료 관련 드라마들 모두 보았다. 굿 닥터도 미드는 시즌 1, 2가 좋았는데, 한국 드라마는 그에 못 미쳤다. 물론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드라마 안 보는 남편까지 불러들여 함께 볼 정도로 좋았다. 병원 드라마는 아니지만, 다중 인격을 다룬 드라마 킬미 힐미도 기억에 남는다. 배우 지성의 연기가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곧 의료 드라마가 피곤해졌다. 원래도 호러 무비나 전쟁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피와 상처에 고개를 돌리고 싶었다. 내 체력과 정신력이 거친 것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뒤늦게 본 응답하라 1988 같은 드라마가 휴식 시간에 알맞았다. 특히 그 드라마 6회에서 최택(박보검 분)의 바둑전에 임한 자세는 안타깝고 마음이 쓰였다. 반면 요즘 나온 경성 크리처는 몇 번을 끊어서 보아도 아직 제대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러니 사랑의 불시착, 동백꽃 필 무렵이나 이태원 클라쓰, 일타스캔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작품이 편했다. 강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잔잔한 공감을 주었던 작품은 나빌레라와 무브 투 헤븐이었다.   


   

나는 드라마를 배우 중심으로 본다. 새로운 드라마가 나오면 출연 배우를 보고 볼 것인지 아닌지를 택한다. 연기를 배우는 중인 배우나, 평생 가도 연기 못하는 배우는 드라마 보면서도 자꾸 걸려 피한다.      


또 발음이 정확하고, 목소리가 깊이 있는 배우에 끌린다. 나의 아저씨는 아무리 보려 해도 이선균의 발음에 걸려서 1회가 넘어가지 않았다. 장나라 같은 배우는 왜 아직 연기를 시키는지 모르겠다. 발음을 들으면 기가 찬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좋고, 시옷 발음 못 하는 배우의 드라마는 거른다.  

   

자의식 강한 대사가 넘치는 드라마도 불편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해도, 미스터 선샤인이나 그들이 사는 세상도 중간에 멈췄다. 노희경 작품을 좋아했어도. 노희경의 1998년 드라마 거짓말은 최고였다. 슬픈 유혹도 당시는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작가는 대개 나이를 먹으면서 순순해지지만 슬프게도 재능이 떨어진다. 젊었을 때처럼 번쩍 튀는 불꽃같은 문장은 떠오르지 않는다. 그 한계를 넘어서 곰국 같은 감동을 주는 참작가로 남기… 어렵다. 

   

며칠 전 자매들 카톡에서 말했다.

“내가 저녁에는 뭐 좀 건설적으로 움직이려 해도 꼼짝하기 싫고 책도 안 봐지는 건 나이 탓이겠지? 저녁 먹고 나면 드라마 보는 거 말곤 못하겠네.”

“나도 그래. 책 읽는데 두 페이지 읽히더라.”

“낮에 전력을 다해 살았으니 밤엔 쉬어야지.”

“밤엔 쉬어. 아버지도 새벽에 책 읽으시고, 밤엔 술 마시고 드라마 보셨어.”

30대 후반 뒤늦게 공부 시작할 때는 밤 9시에 시작하여 새벽 3시까지 공부했다. 글 쓸 거리가 있으면 잠을 잊고 신나게 써댔다. 그랬는데 이제는 저녁이면 쉬어야 한다. 학기 중에는 인강을 듣기도 하지만, 대개 9시부터는 티브이 앞에 붙어 있다가 잔다. 10여 년 전까지 경멸했던 삶이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다 마치고 나면 밤에 볼 수 있는 재미있는 드라마가 예정된 날에는 은근히 기대된다. 웃음이 드물어서일까. 아니면 스우파보다 응팔에서 다시 들은 최희준의 하숙생 노래가 공감이 가는 나이여서일까.      

올해 시간이 마련될 때, 내가 본 드라마 중 한 열 편을 골라 리뷰를 써 볼 생각이다. 사진은 가장 좋았던 드라마 시그널 포스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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