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맛있는 것만 잘 먹는 입 짧은 아이였다. 덩달아 취향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것, 좋아.”
“저것, 정말 싫어.”
사물에 대한 이런 유치한 평가는 스무 살 넘어 한 선배의 예리한 지적을 받고 난 후, 의식적으로 표현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말만 하지 않았을 뿐 본성이 어디 가랴. 마음속으로는 가만히 느끼고 있다.
향수는 젊어서부터 내 주변에 흔했다. 고베 아저씨의 부인이 멋쟁이라, 일본에서 오실 때마다 하나씩 사다 주셨다. 어머니는 그 향수들을 쓰지 않고 포장만 뜯은 채 화장대 위에 그냥 두거나, 장롱 깊숙이 간직하셨다.
심지어 Chanel No. 5는 뚜껑도 열지 않은 채 몇십 년 간직했더니 다 날아가버리고 바닥에 진한 색깔 액체만 조금 남기도 했다.
나는 마음을 끄는 향수를 만나지 못했다. 고상한 멋을 좋아하는 아주머니와 향에 대한 취향이 달랐다. 신선하고, 우아하고, 산뜻한 향은 심심했다. 시험 삼아 뿌려 보고, 휙,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두고 방향제 대신 썼다.
30대에 처음 마음에 드는 향수를 만났다.
Paloma Piccaso. 좋아하는 거, 싫어하는 거가 분명했던 나는 몇 년 줄곧 이 향수를 썼고, 처음으로 한 병의 향수를 다 썼었다. 몸에도 발랐고, 차에도 뿌렸다. 그래서 꼬맹이는 그 향수를 ‘엄마 냄새’라고 기억한다.
그걸 다 쓰고 나서는 또 마음에 드는 향수를 찾지 못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우연히 Dior의 Poison을 알고 한 병 샀다. 향은 깊숙하여 마음에 들었는데, 좀 달았다. 향수를 뿌리고, 혀로 입술을 핥으면 단맛이 느껴질 것처럼. 몸에는 뿌리지 않고, 베개에 뿌리고 자든지, 적적할 때 실내에 뿌려두기 알맞았다.
다음에 알게 된 게 Pure Poison이었다. 이름도 멋진 이 향수는 딱 내 취향이었다. 옅은 향도 아니고, 신선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처음 뿌리면 시원했고, 중간 향은 사실 약간 의아했지만, 잔향이 좋아 특별한 외출에는 이걸 발랐다. 향수도 30ml를 반쯤 쓰고, 바디로션에 특히 탐닉했다. 작은 휴대용을 따로 사서 늘 갖고 다닐 정도로.
그다음은 Midnight Poison을 알았다. 여행길, 면세점에 Pure Poison 바디로션을 사러 갔더니 이미 대세가 Midnight 쪽이어서 그걸 샀다. 아울러 미니어처를 사서 시향 해보았다.
그런데, 이것 재밌었다.
Poison처럼 강하지만, 달지 않고 오래가는 잔향의 느낌이 일품이었다. 그리고 냄새가 좀 중성적이다.
“독하기는 한데, 거슬리지는 않아.”
이걸 쓰다 보니, Pure Poiosn은 도리어 심심했다.
Midnight Poison은 ‘커리어우먼의 특별한 밤 외출을 위한 향’이란 컨셉이다.
그러고 보면, 술이나 향수나 모든 감각적 상품 중에서 좀 독한 넘을 좋아했다. 보드카와 조니워커 블루를 좋다고 했다가 친구들에게 “술맛도 모르는 니가.” 하고 맘껏 야유를 받았다. 그 술은 노곤할 때 스크루 드라이버를 만들어 먹거나, 얼음을 많이 타서 마시면 아주 내 기분에 맞았다. Poison의 느낌과 비슷하다.
내가 향수와 향수 회사의 바디로션을 쓰는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둘은 즉각 기분을 바꾸어 준다. 뭐랄까…, 기분을 매끈하게 해 준달까?
작년에 심드렁해진 내 향수 라인에 뭔가 새로운 입김이 없을까, 면세점을 둘러보다 디올과 샤넬에서 시향 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있는 조말론은 남편에게는 사주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러다 샤넬에서 마침내 마음에 드는 향수를 오래간만에 찾았다. 2012년에 나온 누아르(Noir). 누아르는 처음은 깊고 강하지만, 남는 느낌이 좋았다. 쓸수록 마음에 들어 앞으로도 꽤 오래 쓸 것 같다. 물론 감각적인 제품은 유효기간이 있다.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지겨워져 돌아보지도 않을 때가 온다.
내가 향수에서 멀어진 건 시골에 살게 된 후일 것이다. 향수는 기본적으로 사교를 위한 도구이다. 정원에서 풀 뽑으면서 향수 뿌릴 일 없고, 남자 학생들 가르치면서 강한 향수는 금기이다. 그래도 가끔 기분 전환 하고 싶을 때는 누아르를 뿌린다.
남자 향수에선, 샤넬 알뤼르 옴므를 좋아해서 남편에게 선물 주기도 했다.
향수는 너무 강하거나, 혹은 자기 취향에 딱 맞을 때 숨 막히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알뤼르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혼자 제 방에서 한 달간 절하던 정인은 어느 날 절을 멈추었다. 머리가 맑아지며, 주위에서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그게 더럭 겁이 났다. 알 수 없는 소리 들림에 소름이 오싹오싹 돋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맑아지는 정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정인은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향기에 타협해 버렸다.
베트남의 냐짱, 아나만다라 리조트에서 마사지받을 때, 스팀 사우나를 먼저 마치고 마사지실을 들어서자 하얀 아오자이를 입은 조그만 베트남 처녀는 두 손을 모으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녀의 작은 두 손이 노폐물이 빠진 정인의 몸을 보드랍게 만져 오기 시작하며 처음 맡는 오일의 냄새가 편안하게 정인을 끌어당겼다. 침대에 엎드려 동그란 구멍으로 아래를 바라보자, 물이 담긴 그릇에 연꽃 모양 꽃이 담겨 있었다. 냄새, 처녀의 모습과 손의 힘, 누운 자리, 주변의 풍경, 강하지 않은 그 자극들이 정인을 헤쳐 놓았고, 그 정도가 적당했다.
“Allure. 알뤼르, 무슨 뜻?”
“pace, speed, behavior, air, look 따위? 좋은 단어지. sexual allure의 의미만이 아닌 배가 바람을 받고 나아가는 모습, 차가 전속력으로 달리는 모습, 네 힘찬 걸음걸이, 혹은 너의 수상쩍은 미소, 때로는 단정한 말투 등을 떠올릴 수 있는 단어지.”
술에 취해갈수록 냄새가 뚜렷해졌다. 우리의 대화가 주위의 소음을 제거하듯, 알뤼르는 주위 모든 냄새를 압도하고, 그 자체 하나로만 남았다. 아침에 뿌린 몇 방울의 향이 살로 파고들어 밤늦은 시각까지 제 모습을 강하게 지닐 수 있다는 게 그저 경이로울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알뤼르에 미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