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혼 15년 차 부부의 재혼에 대한 담론
『다시 결혼해도 될까요?』
요즘 티브이에서 하는 ‘끝사랑’ 프로그램을 보았다. 50대까지 연애 프로에 끌어들이는 것을 보니 시간이 더 가면 70대의 연애도 공중파에 등장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남사스러운’ 이런 일이 약간의 환상을 버무려 사람들 앞에 당당히 나타난다. 앞으로도 ‘끝사랑’의 연령은 자꾸 올라갈 것이다. 실제로 미국인이 된 내 동생의 시아버지는 80대인데도 아내와 사별 후 건강한 연애를 하고, 가족 모임에 여자 친구를 동반하고 있다.
내가 재혼했던 15년 전만 해도 재혼은 떠벌일 일이 아니었다. 가족과 아주 가까운 친구들만 초대해서 식을 하고, 조용히 잘 살아주는 게 미덕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끼리 잘 사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아는 이들을 떠나 시골에서 우리의 삶만 경작했다.
우리가 서로를 택할 때 했던 말이 있다.
“나는 당신 곁에서 죽으려고 왔어.”
“나도.”
서로의 마지막까지 책임지고 돌봐줄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시작한 것이다.
사실 젊었을 때 하는 결혼에서는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자각하기 힘들다. 함께 출산과 육아를 겪어가면서 남편이나 아내의 책임감이 자란다. 하지만 재혼은 다르다. 시작부터 상대와 상대의 가족에 대한 책임 질 각오가 되어 있어야 혼인신고를 한다. 만약 그게 두렵다면 굳이 결혼식과 혼인신고를 하는 부담을 안을 필요가 없다. 언제까지나 연애만 하면 된다. 아마 그래서 ‘끝사랑’ 제작진들도 결혼이 아니라 사랑을 내세운 모양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간과하는 현실이 있다. 재혼은 초혼보다 훨씬 어렵다. 더 많이 고려하고, 더 따져야 하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사랑 타령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재혼 실패율이 70%라고 한다. 앞으로 우리 부부는 “당신 곁에서 죽으려고 온” 목표를 달성할 것이다. 결혼 15년을 넘어서니 더 이상 우리에게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안다. 나는 이혼 후 선뜻 혹은 빨리 재혼을 결정하지 말았으면 한다. 재혼은 전 배우자에 대한 감정과 금전적 문제, 갈등 등 모든 것이 정리된 후에 고려해야 한다. 그래서 나같이 나이 지긋한 어른이 이야기를 해주어야 한다 싶었다. 시기가 무르익었다.
2023년 7월의 조사에 의하면,
'재혼 배우자에게 어떤 장점이 있으면 결혼 생활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을까'란 질문에 남성은 '본인을 인정해 주면'(28.1%), 여성은 '본인에게 헌신적이면'(31.1%)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남녀 모두 '친자녀를 아껴주면'(남성 25.1%·여성 28.5%)을 2위로 선택했다. 3위 이하는 남성의 경우 '부부관계가 만족스러우면'(21.3%)에 이어 '알뜰하면'(18.4%) 순이었고, 여성은 '본인을 인정해 주면'(19.1%)과 '부부관계가 만족스러우면'(16.1%) 등 답변이 이어졌다.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70407195583486)
이 기사를 읽으며, 우리 부부의 생활이 왜 안정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랑해서 결혼하지만, 결혼을 지속시키는 힘은 서로에 대한 존중이다. 사랑은 유효기간이 있지만, 존중은 없다.
나와 남편은 상대의 일을 존중하고, 모든 집안일을 같이한다. 그래서 결혼할 당시의 뜨거운 마음은 차분해졌어도, 함께 남은 시간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갈 마음이 남아 있다.
이혼한 직후, 나는
“결혼이라는 게 모르고 한 번 했으면 됐지, 알면서 또 할 건가.”
하는 자조적 태도를 가졌었다.
한 5년이 지나자, 추석이면 아이들이 아빠를 찾아가고 홀로 아무 일 없이 연휴를 보내는 시간이 처절하게 외로웠다. 친구들이 ‘명절 증후군’을 앓는 며느리 입장을 하소연하는 것도 배부르게 들려 외면했다.
아이들을 키우며 싱글로 9년을 사는 시간 동안 첫 결혼에 대한 모든 감정이 사그라지고, 점차 외로움이 커지면서 나는 바뀌었다. 그래서 작은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인연이 닿아 재혼하고 15년을 살았지만,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내가 이만큼 살기까지 겪고, 생각하고, 공부하고 조사한 모든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좀 더 많은 사람이 재혼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면서.
재혼에 관한 책을 소개하려고 찾아보았더니 읽고 참고할 만한 책이 없었다. 그래도 아래 책은 글을 잘 쓰시는 분이라 읽을 만하다. 특히 사별자의 재혼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싣고 있어 시각을 넓혀 주었다.
『재혼하면 행복할까』, 양영제, 2012년
새로 나온 개정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