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024년 9월 결혼 15주년 후 나의 각오
우리는 그날로부터 15년간 함께 살아왔습니다. 인생은 어떤 지점에서도 ‘불행 끝, 행복 시작’은 없었어요. 처음 울퉁불퉁했던 땅이 차츰 우리의 힘으로 다져지며 그 위에 안정된 가정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시작에 가졌던 각오를 하나씩 돌아보며 우리가 일군 것을 정리해 봅니다.
혼자일 때 저는 학원을 하면서 돈을 벌지만 노후가 늘 걱정이었습니다. 연금도 얼마 안 되어 늙으면 어떻게 생활할까에 생각이 미치면 더럭 겁이 났어요.
결혼 초에는 함께 생활비를 냈습니다. 제주에 온 이후에는 제 벌이가 1/3~1/4로 줄어 생활비를 못 내고 남편의 월급으로 삽니다. 아이들이 모두 대학을 졸업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저축합니다. 남편은 연금도 단단해서, 우리는 노후에 경제적 걱정은 없습니다. 제가 버는 돈은 제가 쓰고, 모자라는 부분은 남편이 ‘품위 유지비’란 명목으로 더해줍니다.
사람이 그렇더군요. 곳간이 푸짐해야 인심도 나고 후해집디다. 경제적 안정을 이루니 느긋해지며 삶이 여유로워집니다. 아프지만 않으면 은퇴 후는 여행도 다니며 하고 싶은 일들을 하겠지요. 우리는 결코 심심하게 사는 사람들이 아니니 은퇴해도 뭔가 또 일을 벌이겠지요.
“정치나 사업만 하지 맙시다.”
제가 부탁합니다.
네 자녀 중 둘만 결혼하고 둘은 미혼입니다. 요즘 뭐 결혼이 그리 대수입니까. 하고 싶고 또 인연이 닿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혼자 살겠지요.
남편의 아들은 미국 여자와 결혼하여 미국인이 되어서 우리가 몇 년에 한 번씩 만나러 갑니다. 나머지 셋은 한국에 있고, 자주 오가며 지냅니다.
저희는 ‘낀 세대’라 부모도 돌보고, 아직 미혼인 자녀들에게도 늘 마음을 씁니다. 부모는 죽을 때까지 부모입니다. 얼마 전 취직한 막내딸이 저에게 비싼 아이크림을 선물로 주어서 뭉클했습니다. 고교생 때 만난 새엄마인 저를 언젠가부터 ‘엄마’라고 부르더군요.
제게 재혼해서 얻은 아이들에 대한 제 마음의 자세를 묻는다면 이리 답하겠습니다.
재혼 자녀를 대하는 마음가짐
100% 다 해주려 하지 마라.
무리하게 사랑하려고 애쓰지 마라.
쓸데없는 죄책감을 갖지 마라.
상대의 아이에 대한 불평을 상대에게 하지 마라.
천천히 가면, 시간이 해결해 준다.
지난 15년 동안 둘 다 큰 병은 앓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일로써 병을 물리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플 사이도 없이 일합니다. 우리는 불러주는 이들이 있을 때까지 일하려 합니다. 아마도 칠십이 될 때까지는 현역이겠지요.
건강 관리는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며 체크합니다. 조금씩 수치가 나빠지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네요. 일만 하다 은퇴해서 아프기 시작하면 어쩌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남편이나 저나 일을 재미있게 하고 있어 그만두고 싶지 않네요. 나머진 운명의 영역이라 여깁니다.
예상대로 초기의 재혼 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50년을 따로 산 사람들이 합쳤으니 어려움은 당연합니다. 막말로, ‘이혼 전에 이만큼 노력했다면 헤어지지 않았을 거야.’ 싶을 정도로 우리는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큰 차이점이 있지요. 그때는 어렸고, 지금은 맞는 사람이랑 살고 있으니 어렵더라도 참고 견딜 힘이 생긴 겁니다. 그래서 재혼 후에 힘들 때도 헤어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재혼한 지 15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얼마 전에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이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요. 일하고 싶으면 하고, 혼자 여행 떠나고 싶으면 가고, 술 마시고 싶으면 술 마시고, 뭐든. 남은 인생 그렇게 사세요. 그런 시간이 되었어요.”
뭐 하러 졸혼합니까. 같이 있는 게 더 도움 되는데.
졸혼 안 해도, 같이 살면서 내가 받는 만큼 남편의 자유를 확보해 주렵니다. 물론 남편도 아내에게 많은 걸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작년에 혼자 한 달 뉴욕 여행도 갔다 올 수 있었고요.
60대는 인간의 많은 욕망이 사그라드는 시기입니다. 남은 욕망대로 살아도 그리 순리에 어긋나는 삶은 아닐 겁니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면서 편하게 살아 나가렵니다. 저는 재혼에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