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하늘 텃밭, 우리의 천연 냉장고

by 꼬낀느


남편의 말


사실 집사람과 나는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텃밭과 나무, 꽃과 그리 가깝게 지낸 사람들이 아니었다. 또한 도시에서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자연과 가깝게 지낼 기회도 많지 않았다.


2011년 봄에 주말농장을 찾기 위해 구로구 항동으로 갔다가 우연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생긴 타운하우스인 항동 그린빌라를 알게 되었고, 의기투합한 우리는 바로 이사를 결정했다. 주말이면 모든 주민이 나와서 정원을 가꾸는 마을이어서 우리도 자연스레 꽃, 나무들과 텃밭을 마당에 만들게 되었다. 집 주위에 감나무, 배롱나무, 잣나무, 대추나무, 홍단풍, 은행나무 등으로 둘러싸인 그린빌라는 우리에게 자연을 가르쳐 주었고, 또 텃밭의 소소한 기쁨을 알게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정원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욕심에 조경기능사 공부를 시작해서 부부가 함께 자격증도 받았다.


제주에 집을 설계하면서, 텃밭은 주방에서 접근이 쉬워야 한다는 집사람의 강력한 주장에 의해 2층 주방으로 연결되는 외부 공간에 널찍한 발코니를 만들고 하늘 텃밭을 만들었다. 우리 둘에게 충분한 양의 채소들이 철마다 자란다. 겨울이면 무, 대파, 시금치, 배추를 심고 봄이면 호박, 오이, 토마토, 고추, 상추를 심어 필요할 때마다 주방에서 나가 바로 따와서 요리한다.


부부의 주 활동 공간이 2층이어서 어쩔 수 없이 2층 야외 발코니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우리 텃밭은 일 년 내내 우리에게 싱싱한 채소를 공급해 준다. 약을 치지 않기 때문에 벌레들도 꼬이고 새들도 날아와 쪼아댄다.

‘제철 채소는 보약이란다. 너희들도 많이 먹으렴.’

흐뭇한 마음으로 그들과 나누어 먹는다.



아내의 말


그린빌라에서 저녁 짓다가 고추나 파, 오이가 필요하면 바로 바깥에 나가서 따왔다. 텃밭은 주부의 발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크지 않은 텃밭이라도 두 식구 먹기엔 넘칠 만큼 농사가 잘되기도 한다. 텃밭에서 방금 온 작물은 맛이 기가 막힌다. 싱싱하면 이렇게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그린빌라에서 배웠다.


거름은 음식물 찌꺼기를 묻어주었다. 주로 겨울철에 주고, 여름엔 파리가 많이 꼬여 주지 않는다. 약을 치지 않고 비료도 많이 주지 않아 잘될 때도 있고, 잘 안 되는 작물도 있다. 그러면 그런대로 먹는다.


4월이 되면 텃밭 농사를 시작한다. 올해의 텃밭 농사는 오일장에서 모종을 사 오면서 시작했다. 매년 넘치도록 잘 되던 파가 기지현상(동일한 포장에 같은 작물을 계속 재배하는 경우 현저한 생육장해가 나타나는 현상) 때문에 작년에는 실패했다. 대신 무가 성공하여 몇 번 끝내주는 동치미를 담가 먹었다. 지금 텃밭에는 오이, 고추, 상추, 로메인 상추, 열무, 파들이 자란다. 감자는 뽑아내도 제 자리를 확보하고, 올해도 꿋꿋이 자란다. 아직도 서귀포는 아침 기온이 높지 않아 선선하다. 그 탓인지 올해는 작물들 성장이 더디다.


태풍이 오면 하늘 텃밭은 초토화된다. 여름 태풍이 싹 쓸고 간 어느 해, 서귀포의 길고 더운 가을날 동안, 고추들은 겨울 직전까지 눈부시게 자랐다. 크게 돌보지 않아도, 식물은 우리에게 제 힘껏 자신들을 내주었다.


매일 저녁 준비하며 상추를 뽑아다 쌈으로 먹기도 하고, 무쳐서 겉절이로 먹기도 한다. 열무는 크게 키우지 않고, 좀 자라면 샤부샤부 해서 슬쩍 데쳐 먹는다. 어린싹이 맛있다. 모든 것에 욕심내지 않고, 자라는 대로 맛있게, 즐겁게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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