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32주 2일 막달 검사하다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응급수술로 이 세상에 나왔다.
둘째가 처음으로 마주한 가족이 내가 아니고 고모할머니였다.
10살 차이 고모는 어릴 때부터 나를 업어주고 이뻐해 줬다.
대기업에 취직하면서부터 시집가기 전까지 우리 집에서 같이 살았다. 책상 두 개와 작은 캐비닛 하나
요는 하나만 깔 수 있는 작은방이었다. 고모를 따라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듣다 잠들곤 했던 기억도 난다. 고모가 월급날이면 치킨을 사줬던 기억. 시집갈 땐 동생에게 피아노도 사주고 엄마에게는 냉장고도 사주고 갔다.
고모가 먼 곳으로 시집가지 않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아니지만 크고 작은 일 있을 때마다 엄마처럼 큰언니처럼 함께 였다.
내가 시집을 가서 아이 낳고 어떻게 키워야 하나 고민할 때도 고모는 내가 도와줄 테니 너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했다.
둘째도 낳을까? 말까? 고민할 때도 한 명도 봤는데, 둘은 왜 못 보겠냐며 더 낳으라고 했다.
고모도 힘들었는데 ,아이들도 너무 예쁘고, 네가 허덕허덕 살아가는 게 안쓰러워했던 말들이었다고, 지난해에야 솔직히 고백을 했다.
고모는 딱 11년을 우리 아이들을 봐주시고 진짜 해보고 싶었던 유아보육 공부를 시작했다.
오랜 꿈이었던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셨다.
우리 둘째는 특히나 고모를 너무너무 사랑한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엄마'
'엄마가 좋아? 고모할머니가 좋아?'
여기선 엄청 망설인다^^
고모할머니랑 헤어지는 연습도 일 년이나 기다려줬다.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보다 진하고 느긋하고 낙관적이다.
게다가 다그침도 없고 구박도 없고 어설픔도 덜하다.
고모를 어찌 안 좋아할 수가 있겠는가?
내가 우리 둘째를 구석으로 몰아세우면
끝에는 고모할머니가 안전하게 지켜주었다.
불안함과 겁이 많은 둘째에게는 안전한 울타리 임에 틀림없다.
내가 절대 안 사주는 것도 고모할머니는
꼭 갖고 싶냐며 사주시고 가신다.
그저께도 짜장면이 먹고 싶은데 엄마가 계속 안 사준다며
전화를 몇 번이나 했다.
결국은 짜장면도 안 좋아하는데 고모할머니가 어린이집 출근하기 전 둘째 친구까지 쟁반 짜장면을 사주고 가셨다.
아이에게는 가족의 누군가는 '하지 마라! 사지 마라!라고 엄하게 한다면 또 누군가는 뭐든 '그래그래 힘들었지'하고 위로해주는 이가 있어야 한다는 걸 고모를 통해 배웠다.
일러스트/그림접시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