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보다 꽃이 많이 열렸지

by 그림접시

작은 울타리를 넘어 조그만 배추밭을 지나면 오이덩굴 있어. 꽃을 많이 피우는 오이를 만날 수 있어'라고 스물세 번째 꿀벌이 꿀을 잘 못 따 소심해진 35번째 꿀벌에게 설명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올해 열매 맺기보다 창문 하나를 다 덮고도 모자라 울타리 밖으로도 계속 자라는 것에 관심이 많은 오이를 키웠다. 아침마다 꿀벌들이 붕붕거리며 쉬지 않고 오이꽃에 찾아왔다
한참을 바라보지만 어느 꿀벌 하나 꾀부리지 않고 자기 일을 열심히 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내가 쪼그맣게 돼서 꿀벌 눈 살짝 가리고 '누구게?'라고하며 조금 놀다 다시 꿀따자하고 싶기도 했다.


오이를 좀 더 그냥 둘까도 했지만 더 이상 오이가 열리지도 않고 지저분해 보였다. 마음먹었을 때 오이덩굴을 뜯어내고 잡초를 정리했다.
뜯을 때 보니 당황하며 숨는 사마귀 한 마리와 배고픈 모기 다섯 마리, 어떻게 이렇게 무자비하냐고 조용히 소리치는 꿀벌 자매들을 다시 만났다.
오이가 많이 안 열렸다고 흉봤더랬는데, 오이는 다른 이들을 잘 먹여 살리고 있었던걸 몰라봤다.

일러스트/그림접시/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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