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ore Sep 10. 2020

[수플레] 너와 나의 연결 다리

ep.29 Micheal Jackson - Heal The World

Micheal Jackson - Heal The World


한때 이런 얘기가 돌았다. 페이스북 내에서 일곱 다리를 거치면 전 세계의 누구와도 연결될 수 있대. 맨 처음 믿지 않았다. 60억 명이 고작 일곱 번 만으로? 에이 거짓. 60억 대 7이 말이 되냐.


하지만 이제는 믿을 수 있다. 예상치 못한 연결을 수도 없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친구의 남자 친구가 내 군대 동기의 선배였다거나, 팔로우하고 있던 브런치 작가님이 알고 보니 우리 누나의 전 직장 동료였다거나 하는 사례들.(작가님 보고 계신가요. 언제 한번 술 한잔 해요) SNS만 해도 그렇다. 함께 아는 친구에 뜬금없는 인물이 등장했던 경험, 누구나 다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그룹에서 만난 A와 B가 두 다리 안으로 연결되는 경우다반사다. 나를 매개로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통해서 끊긴 인연이 복구되기도 한다. 나는 이를 '플러스 알파의 만남'이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이루어진 관계는 대체로 은근하고 진득하게 이어지는 것 같다. 플러스 알파를 우연히 발견할 때마다 새삼 느낀다. 우리는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구나.




연결의 힘에 대해 다시 체감한 것은 단연 코로나 때문이었다. 전무후무한 팬데믹 사태, 사실 최근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매일같이 날아오는 안전 안내 문자는 스팸 처리한 지 오래고 공공 방역 수칙만 준수하면 나랑은 무관한 일이겠지 싶었다. 친구도 만나고 맥주도 마시고 심지어 축구도 했다. (그래도 마스크 끼고 했다) 그러나 웬걸. 이틀 전엔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동에 확진자가 떴다는 경고 문자가 왔다. 어제 만난 친구는 알고 보니 확진자가 다녀간 건물에서 점심을 먹고 왔단다. 언제 어딘가에서 무증상 확진자와 옷깃이 스쳤다고 해도 이젠 놀랍지 않다. 또 깨닫는다. 맞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었지. 그렇다면 바이러스가 전파되지 않는다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퍽 무서운 얘기다. 소수의 어떤 작은 악행도 다수에게 반드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뜻이니까. 우리는 그 참담한 효과를 광복절 집회를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그 날 이후, 시민 대부분이 집에 꼼짝없이 갇혀 지내고 있다. 일터를 잃고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많다. 고작 몇 만의 일탈이 몇 천만의 일상을 통째로 빼앗을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마치 팀플에서 도망친 한 명 때문에 나머지 조원이 죄다 D를 받는 기분이다. 그것도 재수강의 기회가 없는 과목에서. 뜬금없는 연대책임에 억울해서 열이 뻗친다. 림태주 시인은 이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가 재확산되면서 절감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저편의 사람이지만, 그가 안녕하고 무탈해야 내 건강과 안위가 보장된다는 역설입니다. 같이 살라는 코로나의 경고 앞에 겸허해집니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은 서로 도와야 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결국 연결되어 있으므로. 그렇다면 우리는 마냥 열만 뻗칠 일인가. '저들과 나는 다르다'라는 굳건한 벽 뒤에 숨어도 되는 일일까. 저들을 온통 손가락질하고 우리는 실컷 억울해하고 뒤돌아서면 그것으로 끝일까.   


이번 사태 이후, 어떤 교회는 '교회가 진심으로 미안합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성찰의 목소리를 냈다. 다른 교회의 그릇된 신념을 제때 견제하지 못했다며, 나와는 상관없는 존재로 선을 긋고 이분하기 바빴다며 반성하는 것이다. 왠지 우리도 그래야 할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부터가 남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거리에서 누군가 목놓아 외치는 목소리는 내게 소음이었고, 그들이 들고 있는 피켓은 도시의 흉물 같았다. 삐뚤어진 그들만 가위로 오려면 세상이 온통 꽃밭일 것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크고 작은 대립을 겪어내면서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그들에겐 내가 삐뚤어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나를 오려내고 싶을 수도 있겠다. 그든 나든 누군가를 잘라내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채론 생을 즐기기 어려울 것이 분명하다.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질시와 미움이 가득해 (노랫말처럼) 상대편도 모두 끌어안자는 따뜻하고 텅 빈 얘기를 할 수는 없다. 다만 조금 이기적일 수는 있다. 나는 누군가 앞을 더듬고 있을 때엔 기꺼이 그 손을 잡아줄 것이다. 그가 나와 반목하던 사람일지라도 말이다. 알량한 우월감이나 시민의식 때문이 아니다. 홀로 헤매던 그가 걸려 넘어진 돌부리에 언젠가 내 자식이 걸려 넘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하지만 결국 우리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한다. 공동체는 마침내 구원될 수 있다. 이기적 이타심을 통해서.




흉흉한 코로나 시국에도 수확이 있다면 이런 것이다. '60억 인구는 과연 일곱 다리 안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을까'라는 질문에 이제 나는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다리는 어쩌면 일곱 개나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다리가 우리들 사이에 촘촘하게 놓여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게 된 것 같아 꽤 기쁘기도 하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 개인과 세계를 잇는 다리. 그런 다리들을 건너고 건너면 못 만날 사람도 없다는 생각을 하니 뭐랄까, 조금 벅차오르게 된다. "지구는 둥그니까/자꾸 걸어 나가면/온 세상 사람들을/다 만나게 될 것"이라는 동요의 진짜 의미를 알 것도 같다. 그 수많은 다리 위를 지금은 바이러스가 바쁘게 뛰어다니고 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사랑이 그럴 수 있으리라.



(2020.09.10)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줄여서 수플레)'는 네 명의 브런치 작가가 매주 수요일마다 본인의 에세이가 담긴 음악을 소개하는 읽고 쓰는 라디오입니다. 잠들기 전 이름 모를 누군가가 추천해주는 노래를 듣고 싶으셨던 분들, 즐겨 듣는 노래에 다른 누군가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궁금해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매주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시지 않을까 싶어요.


구독과 공감, 댓글은 더 좋은 매거진을 위한 원동력이 됩니다. 매주 수요일 '수플레'를 기다려주세요! (비슷한 감성의 음악 공유도 환영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