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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Mar 29. 2019

슬픔이란 무엇인가

 



췌장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하시던 나의 아버지는 끝끝내 할머니께 본인의 병명을 숨기시다가, 이제 더 이상 시간으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마지못해 고백하기로 결심하셨다. 그 고백은 도무지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기 때문에, 다소 힘드실지라도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평생 오라 가라 해본 적 없는 큰아들이 당신을 서울로 부른다는 사실에서 이미 불길함을 감지하셨을 할머니는 내내 알 수 없는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으셨다. 길고 긴 기다림 끝내 마침내, 초조함으로 병원 대기실을 가득 메우던 할머니 앞에 깡마른 아버지가 휠체어를 이끌고 나타나던 그 순간, 속수무책으로 병마와 무기력에 시달려 거죽밖에 남지 않은 예순 먹은 아들과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 발만 동동 구르던 그의 노모가 서로를 알아보던 그 순간, 그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 한 주름에서 다른 주름으로 빠르게 번져나가던 그 슬픔, 그 슬픔의 한복판에서야 나는 비로소 아, 이런 것이 슬픔이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슬픔이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 때 그 날의 두 모자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 말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답할 것이다.


(201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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