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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e Apr 14. 2019

성, 그리고 관계라는 이름

섹스에 관하여



보통 섹스란 개념을 떠올리면 야릇한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쾌락과 행위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인들은 를 은밀하고도 야한 행위로 치부하거나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꺼려하고, 미성년자들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도 못할뿐더러 심지어는 인터넷에서 그것과 관련된 검색조차 할 수 없다. 언제부터 섹스는 음란한 이미지로 굳어졌는가. 왜 섹스는 이렇게 모함받아야 하는가.


섹스는 '관계'다. 섹스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흥분,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진짜 흥분은 ‘개인 간의 관계’에서 온다. 상대가 없다면 흥분도 없다. (자위행위 역시 대부분의 경우 대상을 상정하고 흥분에 도달하므로 ‘관계’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섹스를 할 때, 나의 어떤 행위가 상대를 어떻게 자극하는지 깨닫고, 나와 상대가 공통적으로 느끼는 무언가를 확인하며,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나누는 과정을 거쳐—그러니까 상대방과 깊숙하게 관계하는 것을 통하여—흥분에 이른다. 매 순간 급박하게 돌아가는 육체적 쾌감과 정신적 만족감의 주 속에서 순간을 포착하여 민감하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하 다. 오르가슴은 그것에 대한 짜릿한 보상이며, 행위가 끝난 뒤에 찾아오는 충만한 이완의 느낌은 나와 상대를 더욱 돈독히 묶어주는 끈이다. 하여, 그 관계는 상당히 두텁고 강렬하다.


또한 섹스란 일종의 소통 양식이고, 말보다 더 효과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거나 보여주는 방법이다. 우리는 종종 말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육체적 대화, 표정과 몸짓을 통해 전달하고 받아들인다. 상대방이 나를 배려하고 있다는 느낌, 상대방이 나로 인해 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들이 소통을 가능케 하고 더 나아가 육체와 정신을 꿰뚫어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사랑을 발현한다. 그리고 거기서 파생되는 것은 비단 운동에너지의 합이 아니라 그 이상의 더욱 강력한 무엇이다. 한 남자 또는 한 여자, 그리고 한 번의 정사로 바뀌어버린 역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한편으로 나는 정신적 교감만을 중시하는 플라톤적 사랑이나 육체적인 쾌락만을 나누는 섹스 파트너십과 같은 관계들이 조금 불편하다. 전자는 자연스러운 신체 에너지를 억제함과 동시에 대화의 창구를 애초부터 막아버린다는 폐단이 있고, 후자는 쾌락을 거래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를 바라본다는 찜찜함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마음의 교류 속에서 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고, 몸의 소통 속에서 마음이 좇아오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러니까 결론은,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사랑하시라. 열렬히.


(2015.02.07. 작성 / 2019.4.13. 수정)



함께 읽을 책 :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 로버트 노직 지음, 김한영 옮김, 2014.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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