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4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어제 내린 비로 한풀 꺾였는지 오늘 아침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살짝 한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이란 참 간사해서 더우면 더워서 죽겠다 하고, 추우면 춥다고 난리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날도 선선해서 몬트리올에서 가장 큰 공원인 장드라포(Parc Jean-Drapeau)로 마실을 나가보았다.
역시 여름이라 사람들이 일찍부터 움직인다.
공원입구에는 몬트리올 국제 모자이컬처(Mosaïcultures internationales de Montréal) 광고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었다.
The Biosphere, Environment Museum in Parc Jean- Drapeau
여름 행사 중 하나려니 하고 광고판을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도 한 방향으로 걷고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들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으로 함께 걷게 되었다.
공원과 연결된 세인트 로렌스강(Saint Lawrence River)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넘어 세인트 헬렌 섬 (Île Sainte-Hélène)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좀 전에 내가 스쳐 지나간 몬트리올 국제 모자이컬쳐 (Mosaïcultures internationales de Montréal) 야외 전시회가 진행 중이었다.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이 행사는 리제 코미어(Lise Cormier) 씨가 주도하여 시작되었다고 한다. 리제 코미어 (Lise Cormier)씨는 몬트리올 시 공원, 정원 및 녹지과 부장이자 식물원장으로 있으면서, 1998년에 세계 최초의 국제 모자이컬처 대회를 시작하겠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구상했다고 한다.
몬트리올에서 첫 번째 국제 모자이컬처 대회인 "Mosaïcultures Internationales"는 2000년에 열렸다. 이 행사는 "지구는 모자이크다(The Planet is a Mosaic)"라는 주제로 진행되었고, 14개국 35개 도시 및 기관이 참가하여 73만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후 모자이컬처는 몬트리올뿐만 아니라 상하이(2006년), 하마마쓰(2009년) 등 다른 도시에서도 국제 대회를 개최하며 발전해 왔다.
현재는 세 개의 상징적인 작품이 임시 전시가 아니라, 장 드라포 공원 안에 있는 플로랄리 정원(Floralies Gardens)에 영구적으로 설치되어 연중 방문객들에게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사람들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작품들 사이를 걷고 있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11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조형물인 마더어스(Mother Earth-대지의 어머니)였다.
자애로운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조형물은 꽃으로 만든 거대한 얼굴과 흐르는 머리카락, 야생동물을 품은 손이 지구의 연결성을 상징하며, 팔에서 물이 흘러내려 생명의 순환과 자연의 풍요로움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더어스(Mother Earth-대지의 어머니)의 품이 편한지 그 앞에서 오랫동안 머물고 사진도 찍었다.
하루살이인지, 모기인지 알 수 없는 곤충들이 내 머리 위를 빙빙 도는 것이 성가시다. 손으로 휘적거려 보지만 귓가에서 윙윙대는 소리가 영 기분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그늘진 곳이라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숲 속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었는데..
모기퇴치제를 바르고 나오지 못한 것을 후회하고 있다.
성가신 모기떼에 밀려 걷다 보니 나무를 심은 사람 (The Man Who Planted Trees) 조형물 앞에 다 달았다.
1953년 장 지오노(Jean Giono)의 유명한 단편 소설(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에서 영감을 받아, 1987년에 제작된 프레데릭 백(Frédéric Back)이 감독하고, 1988년 오스카상을 수상한 캐나다의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 (The Man Who Planted Trees, 원제: 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으며, 2009년에는 프레데릭 백 Frédéric Back)의 참여로 이 이야기가 모자이크컬처(mosaiculture) 형태로 생명을 얻게 되었다.
겸손한 양치기 엘제아르 부피에가 황량한 땅을 끈기를 통해 울창한 숲으로 바꾸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는 한 개인이 환경에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을 상징하고 있다.
전시된 작품들을 찬찬히 보면서 단순한 토피어리(Topiary, 식물을 깎아 모양을 만드는 것)를 넘어, 다양한 색상과 질감의 식물들을 금속 프레임에 사용하여 더욱 복잡하고 예술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술과 예술성에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도대체 이런 예술성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증도 생긴다.
이런 모자이컬처 작품들을 통해 도시의 공원과 공공장소를 활기차고 아름다운 예술 공간으로 변화시킬 뿐 아니라, 이를 통해 도시 환경의 질을 높이고,
주민들과 방문객들에게 시각적인 즐거움을 제공하는 몬트리올에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감사하다.
플로랄리 정원(Floralies Gardens)의 끝자락에 닿을 즈음에 Y 자 모양의 조형물이 서 있었다. 정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 본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그것이 전시물인지도 모르고, 설마 저렇게 밋밋한 것이 작품일까?’ 싶어서 무심히 지나쳤는데 그것도 작품이었다.
여섯 쌍의 YY (The six pairs of YY)는 장 드라포 공원의 로고에서 영감을 받아 세워진 맞춤형 작품으로 엑스포 67(Expo 67)과 그 창립 주제인 ‘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를 참고하여 디자인되었다고한다. 이 작품은 세인트-엘렌(Sainte-Hélène) 섬과 노트르담(Notre-Dame) 섬 전역에 걸쳐 총 여섯 쌍의 YY로 구성되어 설치되어 있다. 각 쌍은 인간의 형상을 형상화한 실루엣을 떠올리게 하며, 단결, 협력, 공동체 정신을 상징한다
이 영구 설치물들은 약 50만 송이의 꽃과 식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작품 하나하나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자연과 예술, 그리고 휴식이 결합된 몰입감 있는 경험을 하게 한다.
자연이 주는 생명 예술, 그리고 장소의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는 이 전시물들은 분명 공원을 거니는 이들의 발걸음을 이끌며, 공원의 풍경 속에 새로운 시각적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요즘처럼 기후 변화로 인해 자연환경이 중요해진 시대에 '대지의 어머니'와 '나무를 심은 사람'과 같은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지구와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자연의 균형을 보존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고, 동시에 단순히 아름다운 작품을 넘어선 환경 교육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전시회라 생각한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만나 재미난 경험이었다.
이번 여름 몬트리올로 여행 오실 계획을 세우셨다면 장 드라포 공원(Parc Jean- Drapeau)을 꼭 방문하실 것을 추천한다. 이곳은 엑스포 67에 한국 전시관 (Pavilion)도 있어서 한국인에게는 좀 더 의미 있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