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일찍 도착한 문자메시지
'간밤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부산 남천동 병원...'
대학 선배의 모친상 부고.
이 선배 집이 부산이라 학교 다닐 때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내가 많이 아파 끙끙 앓았더랬다. 1992년 겨울이니 벌써 20년이 다 된 일이지... 선배의 방에 누워 밤새 고열에 시달릴 때 그 어머니께서 걱정이 되셨는지 주무시지 않고 들여다보셨다. 그렇게 딱 하룻밤을 앓고 아침에 일어나 차려주신 밥을 먹고 다시 부산을 싸돌아다녔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아직 일흔도 안되셨는데 돌아가시다니.. 황망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예약하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주말 오후 부산의 교통사정은 서울 못지않았다. 낙동강을 건너 황령 터널을 지나 해운대 방향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고, 들고 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도 지겨울 때 창밖으로 남쪽 항구 부산의 봄빛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
조문을 마치고, 선배를 위로한 뒤 병원 문을 나선 뒤 공항으로 돌아가려 정류장을 찾느라 해운대 쪽으로 몇 걸음을 옮겼을 때 눈에 들어온 간판 '성분도 치과병원'
성분도(聖芬道) - 향기 나는 길..성 베네딕트의 음차
그럼, 여기가 광안리? 그랬다. 나는 빈소가 남천동 KBS 부산총국 근처라고만 들었지 광안리 성분도 수녀원 바로 옆일 것이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클라우디아 수녀님이 계시는 곳, 사람들은 이해인 시인으로 더 많이 알고 있지만. 2000년 샘터에서 일할 때 수녀님을 뵈었고, 홈페이지 기획을 위해 여러 차례 통화, 자료수집 끝에 부산 광안리 성분도 수녀원으로 취재를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이틀을 묵으며 사진 촬영, 동영상 취재를 하면서 클라우디아 수녀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고, 수녀님 덕분에 일반인들은 갈 수 없는 금남의 집, 수녀원 곳곳을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비행기는 느지막이 예약했으므로 1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큰길에서 불과 100m 미만, 그러나 수녀원은 산사와도 같이 고요한 세계. 오후 봄햇살을 가득 안은 뜨락엔 범접하기 어려운 고요와 평안함으로 충만했다. 혹시 하여 수위실에서 클라우디아 수녀님께 전화를 드렸으나 외출하셨는지 연락이 안 되었다. 신분을 밝히고, 허락을 받아 일부 구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10년 만에 찾은 수녀원은 초입에 새 건물들이 몇 개 들어선 것을 빼곤 예전 그대로이다. 핸드폰 카메라로 몇 장 찍었다.
봄볕 가득한 오후 수도원 정원을 아무 말 없이 걸었다.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었으나 인기척 없고, 기계음 하나 들리지 않는 고요함 속에 깊고 충만한 것들이 가슴에 가득했다.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께 메모를 남겼다.
"구름 수녀님,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때 광안리 바다를 함께 걷고, 수녀님 계신 책방에서 맛난 차도 주셨지요. 아내에겐 책과 손수 그림과 성구를 적어 넣으신 조가비를 선물하셨구요. 건강 소식과 근황 신문으로 듣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녀님 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습니다. 주 안에서 더욱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주말 오후 갑작스러운 부고에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달려간 부산, 비통해하는 유족들의 모습과 고인과의 추억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뜻하지 않은 위로와 선물을 받았다. 삶은 그래서 공평한 것 같다.
- 2010년 4월, 네이버 블로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