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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PD의 잡학다식 Aug 26. 2021

분도 수녀원에서 2박 3일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님과 함께

수녀원은 어떤 곳일까?
새마을호 기차 안에서 나는 줄곧 희거나 잿빛 혹은 검은색의 옷을 입은 특수신분의 사람과 그들이 모여서 수도생활을 하는 '수녀원'이라는 생경한 이미지에 대해 긴장하고 있었다.
 기차가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 부산에 비가 내리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찾아가는 광안리 성베니딕도 수녀원. 부산의 교통난은 예상을 뛰어넘어 훨씬 심각했다. 운전기사는 느긋했고, 수녀원보다는 '성분도 병원'이나 '분도 유치원'으로 더 잘 기억하고 있었다. '분도(芬道)'는 '베네딕도'의 음차(音借), '향기 나는 길'. 그러나 수녀원 가는 길은 지하철 공사로 소음이 심하고 각종 건축자재를 쌓아 놓아 거리 또한 번잡했다.
 분도수녀원은 길에서 불과 백여 미터 남짓 떨어져 있지 않았으나 입구의 작은 다리를 건너가자 완전히 다른 세계에 도착한 것처럼 고요했다. 나도 옷깃을 여미었다. 흡사 산사(山寺) 일주문을 지나면서 대웅전에 다가갈 때의 마음과도 같았는데 그 짧은 거리를 두고 속세의 번잡함과 구별되는 느낌과 분위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깨끗하고 잘 정돈된 건물과 정원, 그리고 그 사이를 오가는 수녀들의 단정한 몸가짐, 옷매무새. 수녀원의 첫인상은 온통 '반듯하다'였다.
 이해인 수녀와의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빗속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저, 어떻게 오셨어요?"


"아, 저는 이해인 수녀님을 만나러 서울에서 왔습니다."


"클라우디아 수녀님요? 약속은 하셨나요?"


"네, 그런데 제가 좀 일찍 도착해서요"


  이곳에서 그의 이름은 '클라우디아'였다. 여기는 수도원. 나를 맞이한 분은 은연중에 이해인 수녀 역시 시인이기보다는 한 명의 수도자로 대하고 있으며 또한 그렇게 호칭하여 줄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화장기 없는 맑은 얼굴, 그러나 절도 있는 몸짓의 이 수도자는 나를 객실(나중에 이곳이 '언덕 방'이라는 것을 알았다)로 안내했다. 건물은 지은 지 오래돼 보였지만 모든 것이 깨끗하고 반질반질 윤이 났으며 또한 제자리에 놓여 있어서 나는 약간 주눅이 들었다.

  수녀원의 모든 것은 이렇게 반듯해야 하는 것인가? 책상, 탁자, 기다리며 읽으라고 비치되어 있는 책자들까지...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친절한지? 과도한 친절은 솔직히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내가 2박 3일 동안 분도 수녀원에서 겪은 수도자들은 한결같이 부담스러우리 만큼 친절하였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녹차를 한 잔 내오더라도 받침에 냎킨을 깔고 그 위에 잔을 얹어서 가져오는 데다 어떤 일류 호텔에서도 받아 보지 못한 표정과 자세로 서빙을 해 주는 것이다. 처음엔 그게 다 이해인 수녀를 찾아왔다니까 그러는 것이겠지 라고 생각하였으나 사흘 내내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다정한 말씨와 친근한 눈빛으로 대하는 것에 대해 저윽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아함은 다음 날 감동으로 바뀌어 다가왔다. 10월 3일 휴일 점심 식사시간이었는데 함께 밥을 먹던 수도자에게 그런 점에 대해 물었더니 나에게만 유별나게 친절한 게 아니라고 했다.


"어떤 데서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과한 친절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하던데요. 저 역시 그런 쪽이고요. 오시는 분들마다 이렇게 대하시나요?"


"그럼요. 저희 집에 오시는 분들은 모두 예수님께 대하듯이 합니다. 전부 귀한 분들이죠"


 앗, 충격! 아니 내가 그렇게 귀한 존재인가? 아귀다툼 속 같은 세상에서 아무렇게나 살다 보니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 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남이 귀한 줄은 어찌 알랴.


'분도 수녀원 60년 사'라고 적힌 두툼한 책자를 넘기며 약속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복도에서 높고 맑은, 그리고 매우 빠른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 오셨어? 어. 기다리고 있다고.. 차라도 내지.. 냈어? 땡큐 수녀님.. 여보세요? 아, 여기 광안리 수녀원인데요. 저기 제 프린터가 말을 안 들어서.. 네네.. 부탁할게요.. 고맙습니다. 아, 내 우편물? 그래. 고마워요. 수녀님."


그였다. 내가 처음 만난 것은 그의 말이었다. 속사포처럼 빠르고 나르는 새처럼 날렵한 목소리. 목소리만으로는 그가 50대 중반의 나이임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제가 서울에서 온.."


"아, 반가워요. 잘 생겼네"


 저녁 6시. 기도시간이라고 했다. 이해인 수녀를 따라 성당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성당에 대한 기억이라고는 아는 이들 결혼식에 참석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던 것 밖에 없는 나에게 '성무일도'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어두운 실내를 밝히는 것은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빛이 아니라 성당에 모인 수녀들의 '하나 된 목소리'였다. 운율에 맞춰 구약성서의 '시편'을 읽는(?) -사실은 노래에 가깝다. 서양음악의 모태가 된 중세 그레고리안 성가 역시 이런 형태에서 발전한 것이다. - 150여 명의 수녀들. 그 하나 된 몸짓 속에서 나는 줄곧 이해인 수녀를 관찰했다. 물론 그가 일어설 때 나도 일어서고, 그가 앉을 때 앉으며, 그가 성호를 그을 때 따라 하기 위한 것이기는 했지만 짧은 30분 동안 나는 그가 시인이기 전에 성 베네딕도 수도회 150명의 수도자 가운데 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2박 3일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약간 혼란에 빠졌었다.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한 명의 여류시인을 만난 것인가? 아니면 신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30년 넘게 수도생활을 해온 은자(隱者)의 표상과 마주했던 것인가? 결과적으로 나는 그 둘이 하나로 합쳐진 인간 이해인을 만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에게 詩는 곧 기도이며 기도는 또한 詩인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해인 수녀에 대한 이미지를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곱고 청순했던' 젊은 시절부터 '고상하고 조용할 것 같은' 현재의 이해인까지.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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