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으면 뭐가 좋아요?

꼴레오네의 수필집 #026

by 꼴레오네

건축이란 분야에 한창 푹 빠져 살던 시기가 있었다. 우연치않게 유튜브로 접한 어느 건축교수의 영상 때문이었다. 이전까지 건축이란 문외한 그 자체였고, 관심을 가질 이유나 계기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원래 어떤 관심의 시작은 우연히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나 둘 영상을 보다 보니 어느덧 큰 흥미가 생겨버렸다. 그리고 그 길로 며칠간 그 교수의 유튜브 채널 영상을 마구잡이로 보기 시작했다. 유튜브 영상을 대부분 보고 나서는, 교수가 집필한 서적으로까지 눈을 돌려 무작정 세 권의 책을 사서 읽었다. 그리고 세 권을 모두 다 읽을 때 즈음, 이제 그가 같은 말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튜브에 나오던 내용이 책에 그대로 나왔으며 -아니다. 책에 나온 내용이 유튜브로도 나왔을 가능성이 더 클 것 같다. 아무튼 내 경험의 순서는 영상이 먼저였으니- 세 권의 책에서도 비슷한 가치관이나 같은 결의, 배경이 되는 생각이 공유되었다. 결국 한 사람이 창작한 콘텐츠의 배경은 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창작자가 오랜 고민 또는 연구를 통해 수년 내지는 수 십 년간 내린 결론이 모두 담겨있었다. 더욱 좋은 것은, 그 결론까지 이르게 해 준 모든 사고 과정마저 담겨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아주 운이 좋게 그 교수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그곳에서는 보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지만, 결국 교수가 말하는 방향성은 모두 같았다. 이제는 건축에 대해서라면 마치 그 교수의 시선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이미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그리고 대학 교육을 받으면서 이런 과정을 거친 기억이 있을 것이다. 책 한 권이 저자의 생각을 모두 주입받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고 한다면, 학문과 이론을 단순히 설명해 둔 책은 그 역사를 모두 주입받는 것이 되어버린다. 조금 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학문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도 같이 서술되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특정 기술의 시초나 기원부터 책은 말꼬리를 튼다. 그리고 점점 더 나은 기술이나 개선된 방법이 제시되고, 오~ 이거 좀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그다음 장에서 또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 그렇게 더 나은 기술, 더 편리한 방법이 반복되고 결국 현시대에 이르는 기술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게 된다. 사실 이전 기술은 시험에 잘 나오지도 않고 실무에서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에, 한창 배우는 시기에서는 왜 배우는지 큰 의미를 찾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런 과정을 배운다는 것이 꽤나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기술에 대한 역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었다. 기술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관점에서 어떤 고민을 하였는지를 관찰하다 보면, 현재 가장 발전된 기술이라 여겼던 것에서, 그다음 단계의 진보된 기술을 착안하는 것에 이전 발전과정의 관점과 시각을 응용할 수 있게 된다.


소설과 같은 문학 작품에서도 작가의 공통점이란 것이 보이기도 한다. 군대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에 푹 빠져 살았다. "먼 북소리"와 "상실의 시대"로 시작하여 열 권이 넘는 그의 책을 당시에 읽었던 것 같다. 그의 문체이자 일본어 번역체에 매력을 느꼈고, 신비하면서도 당황스러운 소재와 흐름에 매료되기도 하였다. 그는 실제로 매일 러닝을 하고 재즈를 좋아하여, 수필에서는 종종 러닝이 등장하고 소설 속 이야기에는 비틀스나 비치 보이스 등의 로큰롤 음악 내지는 재즈바 따위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신비로운 여성이나 고양이 그리고 으스스하거나 한적한 분위기의 도시나 마을도 자주 등장했던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소설을 집필해 보니, 소설이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작가가 경험한 감각, 풍경,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려웠던 것 같다.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충분한 인터뷰나 사전조사가 필요하며, 그렇지 않다면 정말 허구에 충실한 - 과장이 되거나 고증이 되지 못하는 등의 묘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결국 소설 따위의 문학도 한 사람의 경험과 배경이 공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설이 1인칭 화자 시점이라면, 나와는 전혀 다른 인물의 일상에 대입이 되어버린다. 그게 바로 타인의 삶에 대한 경험일 것이며, 내가 도전하지 못하거나 시도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한 무언가가 처음 나에게로 오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매일 아침마다 커피를 직접 내려마시는 주인공이 있다고 해보자. 그리고 커피를 내려마실 때 필요한 것들이나 귀찮은 점, 그리고 그 이상으로 긍정적인 경험 - 예를 들면,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른 원두를 사용한다거나, 내려마시는 행위를 통해 아침을 보다 생산적으로 시작한다거나, 커피 내리는 시간을 기다리며 생각을 정리한다거나 등 - 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스턴트 커피만 마시며 살던 독자는 어쩌면 한 번 즘 커피를 내려 마셔볼 수도 있을 것이며, 그동안 귀찮을 것이라 치부하던 커피 내리는 행위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책은 저자가 생애에 걸쳐 해온 모든 노력을 고작 '책 값'만 받고 전수해 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인 셈이다. 그것이 학문에 대한 것이라면, 학문이 진화되고 심화된 수 십, 수 백 년 간의 과정까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이 소설이라면, 타인의 삶을 경험하며 보다 풍부한 일상적 소재를 간접적으로 접해볼 수 있다.


예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장당하곤 했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그랬으며,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책을 읽으라고는 했지만, 왜 책을 읽는 게 좋은지에 대해서는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나 긴 시간이 흘러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조금은 깨닫게 된 것 같다. 심지어는 이 또한 내가 남들보다 아주 조금 책을 더 읽어보았기에 가능한 생각인 것 같다.


책을 읽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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