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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Dec 07. 2016

셀프 서비스

일상의 메모 No.7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음식점 벽에 붙어있던 문구 '물은 셀프서비스입니다'. 주인의 명령과 같은 이 한 마디에 우리는 단 한 번의 저항 없이 수용했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남들 다 하니까 나도.'하면서 엉덩이 들썩거리며 왔다갔다 했다.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싹튼 '셀프'라는 단어는 쉽게 인식을 바꿨다. 음식점을  시작으로 커피숍도 마찬가지다. 주문을 하기 위해 긴 줄을 서고, 진동벨이 울리면 기다렸다는 듯 냉큼 달려가서 묵직한 쟁반을 들고 온다. 빈 그릇도 '퇴식구' 한 켠에 가지런히 올려 놓고 나와야 한다. 요즘은 분야가 확대되어 각종 티켓 구입, 화물, 병원비 수납까지도 직접한다. 이처럼  셀프서비스는 점점 깊숙이 우리 삶 속으로 들어왔다.


어제 구청 민원 창구를 찾아갔다가 진땀을 흘렸다. 생소한 일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원스톱서비스를 기대했지만, 직원의 지시대로 이 창구 저 창구를 오가며 일을 봐야 했다. 심지어 즉석에서 발행해 준 세금 고지서까지도, 창구가 아닌 기계에 고지서 번호를 입력해 가며 직접 수납했다.


업무 효율과 비용 절감 차원에서 결정한 방식이겠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복잡하고 힘들다. 서비스를 셀프로 하는 대신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이 더 줄어들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이미 값비싼   커피 한 잔에는 서비스 비용까지 포함돼 보인다. 그러고도 우리는 로봇처럼 딱딱 줄을 서서 주문을 하고 뒷정리까지 말끔하게 끝내고 나온다.


기술은 더 발전하고   사회는 더 복잡해지는데, 편리하기는 커녕 우리 스스로 해야 할 일은 눈덩이처럼 늘어만 간다. 참 피곤하게 사는 우리들이다. 이런저런 불평을 마구 쏟아댔더니 남편이 한마디 툭 던진다.


"당신이 하기 싫으면 돈을 써.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대행 업체들이 있잖아."


순간, 내편이 아닌 남의 편을 드는 남편이 야속했지만, 툭 튀어나왔던 입은 조금씩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 했지만, 크레이그 램버트가 쓴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라는 책이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쓴 책이라고 하니, 한 번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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