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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Jul 26. 2017

연극을 보고  나서

일상의 메모No.12


친구들이 연극을 보자고 했다. 어떤 연극을 볼까 고민해 봤지만, 딱 정하기가 어려웠다. 중년이 되고 보니 연애 이야기는 너무 시시하고, 코믹은 웃음 코드가 안 맞아서 그리 웃기지 않은 것 같다. 어쩌다 코드가 맞아서 실컷 웃고 공연장을 나오면 왜 그리 허무한지, 너무 소모적인 느낌이 들었다. 사실, 억지로라도 웃어야 마음이 밝아진다고 한다. 하지만 웃음 뒤에 찾아오는 허무와 쓸쓸함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나이가 드니 웃을 일도 줄어들고 웃음도 줄어드는 것 같다.  


많은 연극 중에서 눈길을 끄는 제목 하나가 있었다. 바로 ‘그와 그녀의 목요일’이다. 그와 그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목요일이라는 특정 요일에 대한 기대감이 들었다.


그와 그녀는 애매한 관계다. 연인도, 친구도, 부부도, 원수지간도 아닌 묘한 관계다. 둘 사이에 딸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애틋한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친구라고 하기엔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빠다. 또 만나면 서로 잘 지내기 때문에 원수지간이라고도 할 수 없다. 뭐가 이리 복잡한가 싶었는데, 연극을 보면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무책임한 남자다. 늘 바람처럼 그녀에게 나타났다가 바람처럼 홀연히 사라진다. 언제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늘어놓고 또 다른 그녀를 사랑한다고 그녀 앞에서 당당히 말한다.


그녀는 그의 무책임함도 일방적으로 늘어놓는 이야기도 모두 받아준다. 겉으로는 너그러운 척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다. 위암 선고를 받고 나서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어김없이 그는 그녀의 집에 불쑥 나타나, 매주 목요일 마다 만나서 토론을 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토론은 시작되었고, 역사, 비겁함과 용기, 죽음, 책임감, 솔직함 등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한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와 그녀는 서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되고, 솔직한 마음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무슨 관계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관계라는 것이 꼭 분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가 봐도 비정상적인 관계지만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인정해준다. 그리고 언제든 현실에 지쳐 힘들 때마다 편안한 이야기 상대가 되어준다. 딱히 무슨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평생 내 삶의 언저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주고 위로해 주며,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다.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주고 받는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밖에서는 말을 많이 하다가도 집에 와서는 말을 적게 하는 편이다. 정작 얼굴 맞대고 사는 가족들한테 가장 소홀하고 무관심한 것 같다. 그와 그녀가 주절주절 끝없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일상에서 나는 가족들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주고받나 생각해 봤다. 가족들한테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사랑의 반대는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 닿는다.


이 세상에는 부부, 부모자식, 애인, 남자와 여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관계의 형태는 무수히 많다. 나는 세상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내가 맺은 관계에 대해 얼마나 마음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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