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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Aug 01. 2017

사진 4천장, 사진을 생각하다

일상의 메모 No.14



스마트폰 상단에 고정으로 뜨는 아이콘 하나, 저장 공간 부족! 구입한지 3년이 넘도록 얼마나 많은 것들을 주워 담았던지, 포화 상태란다. 사진과 동영상 찍은 것, 스크랩 한 것, 카카오 톡이나 밴드에서 내려 받은 것, 음악 파일들 등등. 이런 와 중에 꼭 저장해야 할 것이 생기면 응급처지 하는 마음으로 삭제 버튼을 눌러대곤 했다. 결국 몇 주를 더 버티다 스마트폰을 바꾸기로 했다. 바꾸기 전 며칠간은 삭제의 시간을 가졌다. 매일 뒤적여 가며 사진을 지우고, 왜 스크랩했는지도 모르는 파일을 보면서 갸우뚱거리기를 반복했다.

몇 천 장이나 되는 사진을 선별해서 삭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분별하게 찍어 놓은  같은 사진들, 음식 사진과 풍경 사진들은 왜 그리 많은지. 분명, 사진을 찍는 그 순간에는 그 장면이 내 마음에 말을 걸었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사진을 찍었고, 또 나는 그 사진을 활용해서 몇 줄이라도 느낌을 달아 둘 생각이었을 것이다. 사진은 남았으나 생각은 사라지고 없는 상황.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과감하게 삭제 버튼 꾹 누른다.

필름 하나로 24장만 찍을 수 있는 아날로그 카메라가 생각난다. 그 시절에는 사진 자체가 귀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한 장을 찍더라도 신중하게 찍을 수밖에 없었다. 24장을 다 못 찍었을 경우, 현상소에 맡기면 남은 필름을 버리게 되므로 다음에 이어 찍을 때까지 사진들은 필름 안에서 참고 기다려야 했다. 현상소에 맡긴 뒤에도 2~3일을 더 기다려야 했고,  반질반질한 사진을 한 장씩 넘길 때 설렘은 컸다. 궁극에는 예쁜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슴아슴 우리를 자극한다.

요즘 나는 사진을 좀 잘 찍었으면 하고 소망한다.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배우고 싶기도 하다. 스마트폰의 사진 기능이 좋아지면서 쉽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더 생긴 것 같다. 복잡한 기능들을 익혀야 했다면 아예 포기했을 일을, 누구나 다 한다니까 이왕이면 원하는 느낌대로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다.

미국 천재 만화가 크레이그 톰슨은 사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처럼 ‘사진 찍기’에 중독된 시대일수록, 명상을 하듯 특별한 장소ㆍ시간ㆍ대상과 충분히 소통하고 관계를 맺기 위해 정성을 들이는 거죠. 아직도 어떤 나라들에선 사진을 찍히면 영혼을 뺏긴다고 믿는데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을 찍는 행위는 폭력이고, 과시욕을 위한 사진 찍기는 영혼이 없는 행위죠.”

사람보다 음식이 모델이 되는 경우가 더 흔한 요즘, 그 음식 사진은 대부분 과시욕을 위한 사진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음식 사진에는 영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한 번쯤 과시하고 나면 쉽게 버려지는 것이다. 다만, 같은 음식 사진이라도 함께 먹은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음식 사진은 두 사람 사이에를 연결시켜주는 매개체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도 사진 찍기에 중독된 사람이다. 내가 카메라에 찍히는 건 부담스러워하면서, 일행의 뒷모습이나 특정한 모습을 허락 없이 찍어댄다. 또 거리의 행인을 찍거나, 인파로 넘쳐나는 장면들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낯선 사람들을 한꺼번에 찍기도 한다. 이런 나의 행위가 폭력이었다니. 사진 찍기 전에 충분히 생각 해 봐야겠다.

구구절절 긴 문장이나, 섬세한 묘사로 아무리 설명하는 것보다, 한 장의 사진이 ‘쿵’하고 우리의 심장을 강타하기도 한다. 사진이 주는 위력은 생각보다 크다. 전문가는 물론 비전문가들도 사진을 잘 찍고 싶은 열망이 대단하다. 이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어플까지 생겨났다. 어플 하나만 있어도 같은 사진이 180도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다. 평범한 사진이 예술 사진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밋밋한 사진 위에 얼마나 많은 조미료와 양념들을 쳤을지 상상하게 된다. 사진 본래의 진실이 자칫 왜곡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씁쓸하기도 하다. 하긴 내 인물 사진도 보정하지 않고는 절대 공개하지 않으니, 내게도 사진 성형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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