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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Aug 02. 2017

청춘에 대하여

일상의 메모 No.15

처음에는 조금 민망했다. 예의상 그저 그냥 한 번 해 보는 소리겠지? 거짓말이면 어때? 듣고 나면 기분은 좋은걸. 내 얼굴에 은근한 미소를 번지게 하는 그 한 마디. “와..젊어 보여요.”


객지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일찌감치 결혼을 선택했다. 그 결과 젊은 엄마가 되었다. 딸 친구들이 “야, 니네 엄마 왜 이렇게 젊어?” 흠흠, 당연하지. 결혼을 일찍 해서 애를 낳았으니까. 지인들이 딸한테 “엄마가 젊어서 좋겠어.”하고 말하면 정작 딸은 시큰둥하다. 그러면서 콕! 하고 일침을 가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데, 그걸 믿는 게 더 이상해요.” 에잇, 계집애! 그걸 누가 모르나. 꼭 저렇게 확인 사살을 한다니까. 딸의 입은 잔인하다. 이미 죽여 놓고 또 한 번 확인한다. “누가 뒤에서 불러도 절대 뒤 돌아보지 마세요.” 이 정도면 나는 착각 속에서 허우적대기를 멈춰야 한다.


무심코 바늘에 손가락이 찔린 것처럼 뜨끔했지만, 그 이후에도 나는 사람들한테서 그 말 듣기를 즐겼다. 그렇다고 내가 그 말을 듣는 것만 즐기는 건 절대 아니다. 나도 나름대로 그 말에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다. 일단 내 나이보다 적어도 몇 살은 더 어려 보일 거라는 자기 암시를 자주 한다. 몇 년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이 모습 그대로 일 거라고! 물론 세월을 거스를 수 있는 능력은 내게 없지만, 믿는 대로 된다는 그 말을 믿는다. 또 나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인다. 잘 먹기만 하면 살이 통통하게 오르니까 틈날 때마다 움직이자고 마음먹는다. 게으름도 많이 피워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다시 내 몸에 달라붙은 지방들을 움켜쥐며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젊어지고 싶고 예뻐지고 싶은 것은 인간의 욕망이다.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사지로 얼굴을 가꾸고, 운동으로 몸을 가꾸고, 식단 조절로 체중 관리를 하고, 활기찬 생활 패턴으로 마음을 가꾸고 있었다. 우리가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청춘’으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간단하다. ‘청춘’이라는 개념 정리를 다시 하면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청춘의 사전적 의미는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 시절’이다. 그놈의 젊은 나이가 우리의 발목을 잡고 늘어지지만, 이런 것쯤은 한방에 날려버릴 수 있다. 청춘의 기준을 나이가 아니라 마음으로 정하는 것이다. 마음이 젊은 사람은 100세가 되어도 청춘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증명할 실험결과도 있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실험’이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하버드대 심리학 교수 엘렌 랭어가 70~80대 노인 8명에게 ‘추억여행’ 기회를 주면서 20년 전 일상을 살도록 했다. 그들이 생활하는 공간의 모든 것들을 20년 전 분위기로 꾸미고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상을 재연하도록 했다. 일주일의 추억여행이 끝난 뒤, 그들의 신체나이는 놀랍게도 50대 수준으로 젊어졌다고 한다. 엘렌 랭어는 “우리를 울타리에 가두는 것은 신체적인 자아가 아니라 신체적인 한계를  믿는 우리의 사고방식이다.”라고 말했다. 곧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신체도 젊어진다는 뜻이다.

똑딱거리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내 마음의 시계를 돌리는 것은 내 마음대로다. 20대로 돌리든 30대로 돌리든. 아!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지금의 내 나이는 늙어감의 상징이 아니라 그냥 숫자에 불과한 것 같다. 내 딸이 욕을 하거나 말거나, 남들이 빈말을 하거나 말거나, 나는 오늘부터 다시 청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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