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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Mar 11. 2019

스스로 포기하는 법

2019.3.10.일

혜민스님의  책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첫번째 이야기에 이런 내용이 있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이규경 시인의 <용기>라는 시가 소개되었다. 그 시를 읽고 있자니 왠지 모를 감동과 예전 추억 하나가 떠올랐다. 시는 <용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넌 충분히 할 수 있어'로 시작한다.

넌 충분히 할 수 있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용기를 내야 해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용기를 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못 해요

이 시는 허를 찌르는 반전이 있다. 당연히 '열심히 노력해서, 용기를 내서 기필코 제가 해내겠습니다'라는 산업화 시대의 미덕과 같은 말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나는 못 해요'라는 진솔한 개인적 고백으로 끝이 난다. 이 시를 통해 시인은 독자에게 말하는 듯했다. 피나는 노력을 해서 기필코 해내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고, 자기는 못한다고 할 수 없다고,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용기라고 말이다. 정말로 맞는 이야기이다.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16~17쪽 발췌-


오랜만에 동네 카페를 찾아갔다가 주인장이 개인 사정으로 카페 인수할 사람을 찾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귀가 번쩍 뜨여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이 내 마음을 벌써 내 카페라도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었다. 그 날은 커피 맛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정확하게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온통 카페  인수와 운영에 대한 고민으로 시간을 보냈다. 가족들과 상의하면서 진지하게 회의를 한 결과, 가뜩이나 카페 포화 상태로 경쟁이 치열한데, 그 위치는 절대 성공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누가 해도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흘 만에 없었던 일로 싱겁게 끝이 났다.

누구나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 말고, 전혀 다른 분야의 일을 꿈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게 그 일은 나만의 예쁜 카페를 꾸려보는 일이다. 사실 간절하게 원하는 일은 아니다. 그저 환상에 빠져 그 일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며 잘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다. 현실을 벗어나고 싶을 때마다 도피처로 삼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카페를 운영하게 되면 지금 누리고 있는 수많은 일들을 포기해야 한다. 오전 시간에 매일 하는 운동을 포기해야 하고, 금요일마다 어디로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해야 하고, 무엇보다 매달 내야 할 임대료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숨 막힌다. 잘 나가는 카페 주인들처럼 빠릿빠릿하고 야무지게 일을 해낸다거나, 한결같이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일에 자신이 없다. 다양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고, 분위기 있는 나의 공간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그동안 용기 내어 도전해보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용기 내어 스스로에게 말하고 싶다.

"내가 무슨 카페 운영을 해요. 자신 없어요.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심지어 휴일에도 영업을 하며 매출 올리기에 전념할 수 없어요. 그리고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로움을 포기할 수 없어요. 세상 곳곳 예쁜 카페를 내 발로 찾아다니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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