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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향 Mar 12. 2019

수영장 일기

2019.3.11. 월

[산 아래에서는 정상이 잘 보이지만 막상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나무에 가려 중간에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목표를 세워 앞으로 갈 때도 한창 노력하고 있을 땐 앞으로 가고 있는지 잘 느껴지지 않아요. 진보가 없다고 느껴질 때 사실 진보가 있습니다. 주저 말고 계속 가세요.]

-혜민, 《고요할수록 밝아지는 것들》 49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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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전 수영장에 첫발을 딛었을 때, 선두에 있는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이 대단해 보였다. 쉬이 지치지 않고 단박에 목표지점까지 나아가는 모습이 멋져 보였고, 나는 언제쯤 저들처럼 잘할 수 있을까 마냥 부러웠던 시간이다.

일 년 동안 선두에 있던 사람들이 중급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중간에 수영을 그만둔 사람도 있다. 그러는 사이 초급반에 신규 회원들이 들어오고 나가길 반복, 지금은 나와 언니 한 명이 선두를 지키고 있다. 내 기량이 크게 늘어서 선두에 섰다고 할 수 없지만, 그 시간 동안 물과 친해진 건 확실하다.

오늘은 강사님이 찍어준 동영상을 보며, 자세 교정을 보던 중 강사님이 말했다.


" A 회원님(친한 언니)과 B회원님(나)의 동작을 반반 섞으면 완벽할 것 같은데 아쉽네요."


각자 잘 되는 동작이 있는 반면, 연습해도 개선되지 않는 동작도 있다. 누구는 발차기가 잘 되고 누구는 팔 돌리기가 잘 되는 식이다.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늘 앞서지만, 그 욕심을 버리는 일이 더 잘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다. 잘하려고 애쓰다 보면 몸과 마음이 일단 긴장하게 되고, 덩달아 조급 해지며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뻣뻣해진다. 일 년을 한 사람과 십 년을 한 사람의 차이는 물속에서 누리는 여유로움이 아닌가 싶다. 물고기는 위급한 상황에서만 버둥대지, 평상시는 언제나 유유자적하지 않던가.

한 마리 물고기처럼 여유로워지려면 역시 물속에서 보내는 시간이 쌓이고 쌓여야만 한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수영장 문턱을 드나들 일이다.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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