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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ul 26. 2023

선배님, 차에 치이면 내일 출근 안 해도 될까요?

퇴사 '당함'을 기다리는 우리들

여느 회사처럼 사원 대리가 주로 갈리는(?) 문화였던 나의 첫 회사에

1년 후배로 들어온 우리 팀 막내는 나와 야근을 밥 먹는 듯하곤 했다.


우리 바로 위 선배와 5년 정도 차이가 나다 보니 실무를 처리할 사원급은 우리 둘 뿐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노! 를 외칠 수 없는 사회초년생의 위치를 이용한 걸까.


아무튼 나보다 훨씬 더 열정이 넘쳤던 그 친구는 팀의 궂은일을 도맡아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노! 를 외치는 나와 다르게 예스맨이 되어가던 그 후배가 지쳐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쯤이었을까 그 친구가 3-4년 차쯤 되었을 때였을까? 점심을 먹고 회사로 들어가는 길에 던진 말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선배님, 차에 치이면 내일 출근 안 해도 될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는커녕 한참을 웃었던 것 같다. 그 후배가 던진 말이 농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회사 가기 싫어서 차에 몸을 던지는 사람을 상상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로부터 또다시 3-4년이 지나고 나는 회사에 출근하면 참 기이한 행동을 했다.

지금 생각해서 기이한 행동이지 그 당시에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하루종일 사규를 검색하면서 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봤다. 

병가, 휴직, 가족 돌봄… 모든 수를 써서라도 여길 나가고 싶었다. 

아는 사람에게 물어 정신과 진료 기록이 있으면 병가를 쓸 수 있는지 까지 알아봤다.


하지만 아무리 길어야 몇 주 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나는 쫓겨나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스스로 또라이가 되겠다고 다짐한 것이다.

누구든지 내게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든 싸우려고 하고 작은 불만도 크게 만들어 보고하곤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여길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랐던 거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후배도 나도 모두 외부적인 어떤 것에 의해서 나감을 당하고 싶었던 거다.


최근에서야 알았다.

그 후배가 던진 말, 내가 집착하던 기이한 행동들 모두 우울증 증상이었다는 걸.


왜 내 발로 스스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나감을 당해야만 끝낼 수 있는 나와 회사와의 관계, 우리는 왜 건강하지 않은 그런 생각에 빠졌던 걸까?






가끔씩 심심치 않게 들리는 직장 내 스트레스로 괴롭힘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기사를 보면 사람들은 쉽게 말하곤 한다.


’ 그만두면 되지 ‘


그렇지만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회사는 곧 일터, 일터는 곧 내가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면 먹고사는 문제로 괴로워질게 보이니 누구도 쉽게 그만두지 못한다. 

특히 가정이 있는 사람은 더더욱.


그렇게 스스로 ‘나는 절대 그만둘 수 없어’라는 생각에 갇히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그만둘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을 생각하게 될 수도 있다. 

회사 밖의 나를 상상할 수 없게 되면 이젠 회사가 감옥이 된다.


나의 경우 이것 이외에도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는 점, 다시 취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그리고 나 혼자 뒤로 도태될 것이라는 불안함이 그렇게 만들었다.






솔직하게 말해서 결국 퇴사하고 나니 정말 내 걱정은 현실이 됐다.

내 백수시절에는 그럴싸한 성공 스토리도 없었고 남들이 해보지 못한 경험을 매일 하며 즐겁게 보낸 것도 아니었다.


일단 나는 퇴사사실을 부모님께 말하지 못했다. 종종 거짓말을 하게 될 때면 마음이 아팠지만 그게 날 지킬 수 있는 길이라 믿으며 질끈 눈을 감았다.


또다시 취업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러다 영영 일을 못하게 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종종 회사 동기들을 만나고 온 밤이면 우울감에 잠 못 들곤 했다. 나만 아무것도 해낸 게 없는 것 같아서.


그런데 회사를 다닐 때 받았던 스트레스와 비교해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나자 역설적이게도 다시 회사에 출근하고 싶어졌다.


지금은 2년 전보다 훨씬 잘 다니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회사는 다 거기서 거기야'라는 말을 이제 믿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 과거의 그 후배처럼 그리고 나처럼 출근길에 차에 치이고 싶다거나 어떻게든 쉴 수 있는 방법에 집착하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다.


일은 우리를 괴롭히려고 있는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일로써 얻어갈 수 있는 게 많다.

다만 그 일을 하러 모인 여러 이해관계들 그 안에서 우리는 괴롭다.


내 퇴사의 결정적 한방이었던, 누군가의 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되지'라는 말이 그땐 참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오히려 고맙다. 

그러니 모두들 참지말자..


물론 나처럼 퇴사하지 않아도 된다. 그 후배는 아직도 잘 다니고 있는데 아마도 본인만의 돌파 구을 회사 안에서 찾은 듯하다.


중요한 건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되돌아보고 더 아프기 전에 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하는데 희망만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 더 나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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