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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Jan 30. 2022

당신의 일상을 업데이트하시겠습니까?

되돌아보니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느껴진다면

어느 날 저녁 오랜만에 전 회사 동료들과 식사를 하고 온 남편이

집에 돌아와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 부부는 같은 회사 출신이다)


‘아니 그래서 걔는 지금 ㅇㅇㅇ프로젝트에 들어갔데’

‘그 형은 이직해서 연봉 엄청 올렸다던데?’


나도 이미 익숙한 이름들의 소식이라

한참을 ‘그렇구나 그렇게 살고 있구나’ 하다가


남편이 ‘이렇게라도 소식 전해 들으니 재밌지 않아?’ 라며 묻는데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당황하는 남편을 앞에 두고 한참을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가 입을 열었다.

‘... 난 말해줄 게 없네... 난 너무 그대로라서’




충전을 목표로 잠시 회사를 쉬다가 

임신을 하면서 한동안은 육아에 전념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하루하루 쌓아가던 커리어도 잠시 멈춘 채

자기 계발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린,

나는 그저 흐르는 대로 살고 있는 한 사람일 뿐이었다.


매년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 맨 앞 장에 

'단 한 가지라도 새로운 일을 하자'라고 적어두던 사람

변화와 도전을 항상 옆에 끼고 살던 사람

그게 바로 나였는데 말이다.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를 하면서

'나'라는 존재는 점점 잊히고 그 자리를 아이가 대신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우리 애가 얼마나 먹는지 언제 자는지 어떻게 노는지에

온 신경이 곤두서 있을 뿐이었으니까


이런 내게 누군가 '어떻게 지냈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애 키우느라,,,'라고 답할게 뻔했다.




정말... 난 한 게 없는 걸까?


인생의 큰 그림을 그려가면서 목표를 향해 달려왔던 20대

그런 일상을 이상적인 것이라고 여겨왔던 내게

퇴사와 함께 육아라는 과제를 안겨준 30대


사실 퇴사 이후의 삶은 멈춰져 있는, 

그리고 다시 언제 출발할지 모르는 여행 같았다.


항상 다음 목표가 자동적으로 정해져 있는 삶을 살던 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생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직장인이

직장을 잘 다니다가 결혼을, 결혼을 하고 잘 살다가 육아를

그런데 육아 다음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도착지가 미정인 여행, 자신 있게 떠난 그 여행에서

난 어느 순간 방황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책의 글귀처럼


인생에 절대적으로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고
그래서 내가 뒤쳐지거나 부족하다던가
지금보다 더 나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큰 그림의 일부가 아니라 그냥 오늘이니까


'엄마'로서의 삶도 충분히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로서 살아볼 수 있어서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볼 수 있어서 

늘 새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똑같아 보이는 하루여서

누군가에게 그럴싸하게 설명할 수 없었기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던 나의 하루들


하지만 그 하루 속에서 살아가는 내가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하는 내가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나였다면

그걸로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다고 나를 응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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