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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로지 May 05. 2024

부담스러우면 안되는 길

02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큰 회사였다.

뭐든지 다 파는, 그러니까 살게 없어도 내가 한 번씩 꼭 둘러보는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그런 쇼핑몰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로를 판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아니 애초에 세로라는 게 팔 수 있는 물건이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유행 아이템의 이름이 세로라도 된다는 건가?'


"아 네... 팀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세로가 어떤 물건인가요? 눈에 보이는?"

"그게 뭐 살면서 한 번도 세로를 사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잘 모를 수도 있죠"


더 물으려는 내 질문을 막으려는 듯 팀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꼭 눈에 보여야지만 팔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회사엔 그런 것들이 참 많거든요."


팀장은 시계를 한번 노트북을 한번 번갈아 쳐다보며 회의가 있어 점심 식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세로... 뭐 뭘 판던 어쨌든 잘된 일이야'

자리로 돌아가려 일어서려는 찰나 팀장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아 참 장대리님, 잠시만요"

뒤돌아서 다시 앉으니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며 말했다.


"장 대리님 꽤 오래 쉬다 온 거,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갑자기 심장이 또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래... 3년이나 쉬다왔으니 날 안좋게 보겠지?'

'아마도 일을 제대로 못하면 3개월 안에는 짤릴 수 있다고 말하려나'

리듬감이나 박자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심장박동.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 듯 하다가 불현듯 3년 전에 아픈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전회사를 퇴사하고 한동안 

그 결정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질문하며 끊임없이 나는 나를 괴롭혔다.

'다들 버티잖아, 근데 왜 너는 그 모양이니?'


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속을 느릿하게 추락하듯

서서히 잠겨가는 나를 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모든 걸 그만두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막날에 나는 가족들도 내가 불편할까봐 하지 못하는 질문들에 허우적대며 바다 속을 빠져나왔다.


그 중에 한 질문은 내 마음을 관통해서 그대로 박혀버렸다.

"이대로 퇴사하고 다른데서 다시 일하고 싶다고? 놀다가 온 사람을 누가 받아줘?"

3년 전의 일이었다.


다시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그 말은 정말 날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집 밖으로 한발자국도 쉽게 나서질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지만,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였다는 걸.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용기를 부려본 것이다.


그러고 나선 죽을힘을 다해 내 마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주려 힘썼다.

시간이 흘러하고 다시 일이 하고 싶어 진 건 3년 만의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다시 일할 수 있게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시간은 내 맘속에 자리 잡아

똬리를 튼 뱀처럼 언제든 나를 물려고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팀장의 말을 그 뱀에게 커다란 바구니를 덮어버렸다.


"부담을 가지지 말았으면 해요. 출근길이 부담스러우면 안 되잖아요?"

벙진 표정 앞의 나를 두고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적어도 우리 팀 안에서는 그런 팀원은 없었으면 해서요.

오늘은 첫 출근 날이니 그냥 분위기 파악 정도 한다고 보고 가시면 돼요"


내게 회사란 아주 얇은 얼음 위를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나의 걸음이 언제 무너질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불안감과 초조함.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뒤에선 나를 평가하는 키보드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아침에 눈 뜨는 일이 괴롭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그 출근길도 말이다.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후배의 말이 농담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옆자리의 이 과장이 간단하게 업무 시스템에 대해 알려주고

업무 관련 문서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니 곧 퇴근시간이 되었다.


얼른 들어가 보라는 팀장의 손짓과 함께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사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누워있자 3년만의 첫출근을 묻는 친구들의 메세지가 왔다.

출근길은 가벼웠고, 회사는 좀 이상했다고.

내 대답은 이 이상으로는 할 말이 없었다.

내 출근길을 걱정하는 이 회사는 정말 좀 이상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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