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큰 회사였다.
뭐든지 다 파는...
그러니까 우리가 가끔 살게 없어도 습관처럼 하루에 한 번쯤 들어가 보는 인터넷 쇼핑몰이었다.
그런 쇼핑몰에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세로를 판다는 게 이상할 따름이었다.
'아니 애초에 세로라는 게 팔 수 있는 물건이라도 된다는 건가?'
'아니면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유행 아이템의 이름이 세로라도 된다는 건가?'
"아 네... 팀장님,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세로가 어떤 물건인가요?"
"그게 뭐 살면서 한 번도 세로를 사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잘 모를 수도 있죠"
더 물으려는 내 질문을 막으려는 듯 팀장은 말을 이어나갔다.
"꼭 눈에 보여야지만 팔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우리 회사엔 그런 것들이 참 많거든요."
팀장은 시계를 한번 노트북을 한번 번갈아 쳐다보며 회의가 있어 점심 식사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세로... 뭐 뭘 판던 어쨌든 잘된 일이야'
자리로 돌아가려 일어서려는 찰나 팀장이 다시 나를 불렀다.
"아 참 장대리님, 잠시만요"
뒤돌아서 다시 앉으니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며 말했다.
"장 대리님 꽤 오래 쉬다 온 거,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갑자기 심장이 또 제멋대로 뛰기 시작했다.
'그래... 3년이나 쉬다 왔으니 날 안 좋게 보겠지?'
'아마도 일을 제대로 못하면 3개월 안에는 잘릴 수 있다고 말하려나'
리듬감이나 박자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고 예측불가능한 심장박동.
머리가 살짝 어지러울 듯하다가 불현듯 3년 전에 아픈 말이 다시 떠올랐다.
전회사를 퇴사하고 한동안
그 결정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질문하며 끊임없이 내가 나를 괴롭혔다.
'다들 버티잖아, 근데 왜 너는 그 모양이니?'
하지만 바닥이 보이지 않는 물속을 느릿하게 추락하듯
서서히 잠겨가는 나를 보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모든 걸 그만두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그게 최선이었어'
퇴사하던 마지막 날,
나는 불편한 질문들에 허우적대며 그 바닷속을 빠져나왔다.
잘 피했다고 생각했는데 질문 하나가 내 마음을 관통해서 그대로 박혀버렸다.
"퇴사하고 쉬다가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가 그런 사람을 받아준데요?"
3년 전의 일이었다.
다시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그 말은 정말 날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쉽게 나서질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나는 깨달았다.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지만, 못한다고 말하는 것도 용기였다는 걸.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용기를 부려본 것이다.
그러고 나선 죽을힘을 다해 내 마음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어주려 힘썼다.
시간이 흘러하고 다시 일이 하고 싶어 진 건 3년 만의 일이었다.
어쨌든 지금,
다시 일할 수 있게 기회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3년이라는 시간은 내 맘속에 자리 잡아
똬리를 튼 뱀처럼 언제든 나를 물려고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팀장의 말을 그 뱀에게 커다란 바구니를 덮어버렸다.
"부담을 가지지 말았으면 해요. 출근길이 부담스러우면 안 되잖아요?"
벙진 표정 앞의 나를 두고 그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적어도 우리 팀 안에서는 그런 팀원은 없었으면 해서요.
오늘은 첫 출근 날이니 그냥 분위기 파악 정도 한다고 보고 가시면 돼요"
내게 회사란 아주 얇은 얼음 위를 걸어 다니는 느낌이었다.
나의 걸음이 언제 무너질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는 듯한 불안감과 초조함.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내 뒤에선 나를 평가하는 키보드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아침에 눈 뜨는 일이 괴롭다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리고 그 출근길도 말이다.
출근길에 차에 치였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후배의 말이 농담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던 날도 있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옆자리의 이 과장이 간단하게 업무 시스템에 대해 알려주고
업무 관련 문서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니 곧 퇴근시간이 되었다.
얼른 들어가 보라는 팀장의 손짓과 함께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회사를 나왔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 돌리고 누워있자 3년 만의 첫 출근을 묻는 친구들의 메시지가 왔다.
출근길은 가벼웠고, 회사는 좀 이상했다고.
내 대답은 이 이상으로는 할 말이 없었다.
내 출근길을 걱정하는 이 회사는 정말 좀 이상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