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용서하는 일

용서가 무엇일까?

by 이상현


뒤늦게 부모님이 거주하는 집에서 나와 반강제(?)적으로 독립하고 있다. 집을 나온 그 해 겨울은 유난히 한기가 짙은 계절이었다. 본가를 나와 자취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버지와의 트러블이 원인이었다. 난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그만큼 더 용서할 수 없었다. 아버지 역시 나를 이해하려 하는 마음은 없었다.

오히려 마음에 생채기 내는 말을 함으로써 상처주기 일쑤였다. 가끔 내 마음의 그릇 크기는 얼마만큼일까 생각해 보곤 하던 나였지만, 하루는 고주망태가 되어 침대에 넝마처럼 쓰러져 누워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내 마음의 그릇은 누가 건들지도 않았는데 찌이잉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아버지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것일까. 무엇으로 어떻게 해야 최선의, 최고의 복수를 할 수 있을지 몰랐다. 나는 아버지에게 다친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상처가 트라우마로 남아버린 내 마음을 되찾고 싶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2025년 8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이제 나는 자취 생활 2년 6개월 차 접어들었다. 그 기간 동안 아버지를 대면한 날은 3번을 넘지 않는다. 그것도 어머니가 중간에 개입해 만나게 되었다. 내가 먼저 아버지를 찾지 않고 아버지 역시 전화나 문자 한 통 없다. 나는 요즘 마음이 편하다. 조금 이기적이고 싶다. 내가 받은 마음의 상처.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처. 누군가는 위로라고 섣불리 건네는 말이 또 한 번 생채기를 낸다.

거꾸로 묻고 싶은 경우도 있다. 어설픈 위로를 건네는 그네들에게 내가 겪은 상황을 겪으면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한 철학자가 남자는 아버지를 용서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용서. 용서가 무엇이지? 누구를 위해 용서해야 하는 것일까? 요즘 난 퇴근하고 불 꺼진 집에 들어가면 조금은 쓸쓸하고 심심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다. 누적된 생채기마저 망각되고 있는 기분이다. 숲 속 한가운데에서 산들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내 얼굴을 부드럽게 감싸고 지나가는 느낌.


하느님을 기만한 죄로 하늘이 두렵지도 않다면,

용서를 하고 받고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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