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는 아닌 거 같다. 하지만 막상 글을 쓰려니 갑작스러운 글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버렸어. 가끔 떠오르는 너의 모습은 내 상상으로 귀결되고 만다. 그리고 언제나 잘 지내겠지 하며 너의 상상을 끝맺음 맺곤 한다. 20년이 지난 너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 나와 함께 미래를 그리던 순간은 찰나의 시간, 지금 너의 곁에는 다른 사람이 곁에 있겠지. 내 기억 속, 너의 모습은 20년 전 모습에 머물러 있다. 함께 하지 못한 시간만큼 아쉬운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너와 헤어지고 보낸 많은 긴 밤들. 처음에는 그 밤들이 익숙하지 않았다. 마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기분이었어. 어린아이가 제 몸보다 큰 정장을 입은 듯한 기분. 난 그만큼 미숙했고, 물론 지금도 미숙한 기분이고, 너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의 익숙함에 당연시한 행동들도 많았다. 평생 갈 거 같던 너와의 순간을 헤어지고 난 뒤에야 긴 밤을 수없이 보내고 알게 되었다. 그 순간이 너무도 짧고 긴 밤은 평생을 옥죄어 온다는 것을. 난 그렇게 술로 밤을 보내는 날이 많았다. 넋두리를 하고 위로를 받고 또 넋두리를 하고. 그러다 밤이 되면 저절로 술을 찾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어. 그러다 잠이 들면 꿈을 꿔. 꿈속에는 언제나 네가 나왔어. 뿌연 유리창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듯 다가오지는 않는 너. 그래 몇 년은 그랬어. 그렇게 너의 꿈을 꿨어. 너의 소식을 알 수는 없었어.
언제부턴가 너의 생각이 조금씩 줄어들게 되었다. 그건 네가 꿈에 나오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도 그만큼 핑계 삼아 찾는 술을 줄여가는 중이었어.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너무 마셔서 지금은 몸도 생각해야 할거 같고. 너 없이 보낸 길고 긴 지난한 시간이 지금 돌아보니 참 순간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너를 만난 건 내게 행운이고 행복이었다. 너를 만난 시간. 그 시간 속의 순간과 기록들. 가끔 나에게 첫사랑이 누구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 그때마다 난 어머니가 내 첫사랑이라고 대답하곤 해. 유년시절 어머니를 애틋하게 기다린 적이 있었거든. 어머니 말고 첫사랑이 누구냐고 또 물으면 난 너라고 대답해. 난 그때, 헤어질 때 너의 대답을 아마도 내 기억 속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가지 않을까 싶어. 내 첫사랑은 너야.라고 답해주었던 너.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모든 미련이 사라졌어. 시간이 지나 그 시간 속의 순간과 기록들은 나에게 추억으로 남아 존재하고 있다. 가끔 떠올려지는 네가 잘 지내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며칠 전 밤, 꿈을 꿨어. 꿈에 네가 나왔어. 신기했어. 그 긴 시간 동안, 그 무수한 밤을 아무 일 없이 보내던 나로서는 예고 없이 꿈속에서 너를 봐 신기했어. 너는 기척 없이, 슬며시 다가왔다 사라진다. 잠이 깬 나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다 아침 해가 들이치는 창 너머로 고개를 돌리다 자리에서 일어났어. 어쩔 수 없이 그날은 온종일 너를 생각했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어. 그렇다고 내 주변에 너의 소식을 물어볼 사람 한 명이라도 남아 있지 않아. 그저 나는 네가 잘 지내길 바랄 뿐이다. 꿈에 나오는 너는 내가 아직도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인가 보다고 생각하고 있다.
계절은 또, 여전히 계속해서 바뀌어 간다. 네가 머무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