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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ul 03. 2017

장마가 시작되는 어느 날.

사진.

비가 내리고 있는 지금 자정이 막 넘었습니다. 잠자리에 들어야 할 시간, 저는 괜히 커피를 진하게 타서 한잔 마십니다. 빗소리만이 커다랗게 울리고 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조금은 멍한 표정으로 노트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흘렀고 앞으로도 흐르겠지요. 어떤 날은 과거에 사로잡혀 버린 저를 봅니다. 과거는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요? 가끔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시간 안에 갇힌 것 같은 기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 가끔 저는 사진을 꺼내 봅니다. 빛을 머금은 사진들. 그 안에서 저는 무엇을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엇을 보았을까요? 단지 카메라를 응시한 것만은 아닐 겁니다. 


날씨가 많이 더운 요즘, 가뭄이었다고 합니다. 그 더위 속에 땀으로 젖은 몸을 씻기 위해 욕실로 들어간 저는 거울을 봅니다. 조금은 건조한 조금은 생기가 없는 듯한 얼굴이 나타납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시간들이 쌓이고 그만큼 저는 과거에 속한 인간이 되겠지요. 잊혀지는 존재. 그리고 그것을 끄집어 내려는 듯 저는 다시 사진을 꺼내 볼 겁니다. 가끔은 사진 속의 내 얼굴이, 표정이 낯설기도 할 겁니다. 지금과는 다른 곳을 보는 그 사진 속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사진을 잘 찍지 않은 저를 보게 됩니다. 무엇을 망설였을지 생각해보지만 단지 그냥이라는 말로 그 상황을 넘어가려고 했던 거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나조차 나를 보기 싫어서일지도 모릅니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지금에서야 기억을 끄집어내어 떠올린다는 것이, 지금 비가 내리는 밤 어울릴지 모르지만 이렇게 저는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잔속의 커피가 식고 바닥을 드러냅니다. 마침 거센 빗소리도 점점 사그라들고 있습니다. 고요해지는 밤, 창밖으로 어둠 속에서 간간히 빛이 보입니다. 포근한 밤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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