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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Nov 14. 2017

관계, 홀로서기.


어느 날, 노란 은행나뭇잎이 쌓인 벤치에 앉아 있었습니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며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 무심히 고개를 돌리던 그때 먼 곳을 응시하며 서 있는 한 아줌마가 눈에 들어옵니다. 잠시 뒤 유치원 버스가 그 아줌마 앞에 멈춰 서더니 문이 열리며 조그마한 아이가 내립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아줌마의 미소가 버스 안으로 향하고 아줌마는 아이의 손을 잡은 채 서둘러 길을 갑니다. 그 길 뒤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과 같은 색깔의 상의를 입은 커플이 보였습니다. 엄마와 아이의 맞잡은 손, 교복, 커플룩은 그 관계의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겠죠.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하는지 그 형태도 중요하겠지만, 관계란 타인과의 교감이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 대화를 위한 시간과 자리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일상은 그리 넉넉하지도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개개인 성향의 차이는 있겠지만, 무심결 했던 말이 나도 모르게 커다란 오해로 남으면서 상처로 남을 때. 그렇게 갈등이 일어나 발생하는 작은 균열은 그 시간이 늘어갈수록 관계가 주는 형태만큼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당연히 아는 사실을 어쩌면 당연하다는 말로 쉽게 간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계절이 바뀌고 바뀌어 또 한 해가 흘러가면서 상처가 아물며 자리 잡은 흉터처럼 딱 그만큼의 생채기만을 원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일들이 나를 통과할 때 그것들을 견딜 수 있어야 했으니까요. 혼자였다면 아무래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혼자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얀빛을 맞이하며 울음을 터트리는 그 순간부터 말입니다. 가끔 예전에 들었던 말이 떠오를 때가 있습니다. 술잔을 기울일 때, 이유 없이 잠에서 깬 밤 어둠이 주는 몽환 속에서 말입니다. 


세상의 모두가 너에게 등을 돌려도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무심히 툭 내뱉은 그 영화 대사 같은 말을 들은 저는 지금도 그때의 그 흔적이 흑백영화의 한 부분처럼 떠오릅니다. 그것은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나는 어떻게 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물음을 던지며 내게 남겨진 생채기를 견딜 수 있게 하는 의미로 남았습니다. 셀 수도 없을 만큼 대립되는 많은 사고의 한 부분에 서서 저는 저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나는, 우리는 어떤 관계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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