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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Jan 02. 2018

지랄 총량의 법칙.

a better life.


총량이면 총량이지 지랄 총량의 법칙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느 브런치 작가의 글을 읽고 인터넷에 지랄 총량의 법칙을 검색해 봤다. 정말이지. 깜짝 놀랐다. 지랄 총량의 법칙에 대해 인터넷에는 개념 정의가 내려져 있었다. 


아무튼 내 나이 35세, 여태껏 나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충분히 따랐다. 이것은 후회도 아니고 앞으로의 발전도 아니다. 그저 정말로 내 나이에 맞게 지랄 총량의 법칙대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괜찮지가 않다. 내가 선택한 기억과 남들이 바라보는 기준이 있다. 그 어떤 신념 사이에 어쩔 수 없는 것은 없어.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다독이지만 지랄 총량의 법칙대로 나는 아침마다 이불을 하이킥 하며 후회하곤 한다. 


일단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이다. 영화는 간접적인 체험과 세상의 곳곳을 들여다보게 한다. 아무리 각색과 각본이 있다고 해도 그것은 인간이 적어 내려 간 한편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말한다. 유독 기억나는 영화가 있다. 몇 년이 지났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영화는 '이민자'라는 영화였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영화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아들이 주로 나온다. 멕시코계 사람들이 미국의 이민자가 되어 힘겹게 살아가는 이야기다. 중요한 것은 이 부자의 대화 내용이다. 이민자들의 입장은 잘 와 닿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저 그들, 부자의 상황이 어려웠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가족에게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럼에도 이민자의 아버지는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대하고 키운다. 아버지는 말한다. " 너는 나처럼 살아서는 안돼." 

나는 영화의 내용이 가물가물 한 상태이지만 그 이민지 아버지의 대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아들에게 너는 나처럼 살아서는 안돼 라고 말해주는 아버지. 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서도 자리를 지키고 말았다. 충격적이었다. 영화지만, 그 아버지를 연기한 배우의 대사지만 진실로 마음에 다가왔다. 정말, 그렇게 말해 줄 수 있는 아버지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때로 여유가 있어서, 때로 자존심과 고집에 근자감이 넘치기도 하지만, 지금에 와서 이해한다고도 하지만, 지랄 총량의 법칙대로 나는 살아왔던 것이다. 그것까지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아버지에게 "당신처럼은 살지 않겠어."라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모두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밤 영화 "이민자"를 찾아보고 내가 행한 지랄 총량의 법칙대로 이불에 하이킥을 할 것이다. 나는 당신처럼은 살지 않겠어.라고 했던 그 말을 다시 주워 담기는 쉽지 않지만, 나는 오늘 밤을 그렇게 맞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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