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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Nov 08. 2019

노을이 지는 시간

노을이 지고 있는 하늘을 한참 동안, 아니 노을이 다 질 때까지 바라봤습니다. 마지막 빛이 꼭 사그라드는 성냥개비의 불씨처럼 파르르 떨더니 사위는 금방 어두워졌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무심히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는 것입니다. 장소는 어디가 되든 상관없습니다. 길을 걷다가 노을이 지는 붉고 노랗고 하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합니다. 노을을 바라보는데 제게 필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노을이 지는 시간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저는 일 년 삼백육십오일 노을을 바라볼 거 같다는 생각입니다. 왜일까요? 그 시간, 노을이 지는 시간의 저녁 어스름이 주는 안락함이 좋습니다. 세상은 만만치 않은데 마냥 노을만 기다리고 바라보다간 낙오자가 될 것입니다.


어릴 적 제가 사는 동네에는 성당이 있었습니다. 그 성당은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 꼭 종을 울리곤 했습니다.

땡~땡~땡.

성당은 동네의 높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어 종소리가 멀리 퍼져나갔습니다. 그리고 종소리에 맞춰 저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때 바라본 붉고 노랗게 타오르는 하늘이 지금과 같은 하늘이지만 저는 아직도 그 어린 날의 하늘을 잊지 못하고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안락함이 기억에 남아 존재하게 된 것이죠. 저에겐 추억이라 붙여도 될 은밀한 비밀인 셈입니다. 그 시간의 저는 지금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저 역시 지금처럼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지 그건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노을이 주는 안락함은 여전히 제 기억 속에 남아 향기로운 그 어린 시절을 꿈꾸듯이 되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앞으로 수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또 좌절시키겠지만, 그래서 회환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노을이 지는 붉은 하늘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저를 꿈꾸듯 살아가고 싶은 시간입니다. 


저에게 꿈은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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