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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Dec 30. 2019

허무함

위로

이제 한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창 너머 내다본 세상에는 비가 살며시 내리고 있습니다. 어둠이 깔린 세상을 한참을 바라보다 노트북을 켜 가만히 커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밤입니다. 그럼에도 노트북 전원을 누르고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감정의 덩어리를 가슴에만 끌어안고 있기에는 밤이 너무나도 길게 느껴집니다. 


한 해가 저물며 무엇인가를 상실한 많은 시간이 떠오릅니다. 꼭 고해성사 같은, 새로운 달력을 꺼내야 무엇인가 고해성사의 합당한 이유가 될 거 같은 요즘입니다. 열심히 살았나요?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지는 않았나요? 그냥 살아가면 될까요? 생각해보니 저에겐, 주변의 누군가가 눈에 띄지 않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살아가다 꼭 제 혼자만 세상의 끝에 서서 나이에 비해 훌쩍 늙어버린 기분에 무엇도 하지 못하는 나를 바라봅니다. 빈 공간을 메우기 위해, 빈 시간을 메우기 위해 정작 중요한 나의 시간과 공간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는 걸 느끼고 나면 세상 다 살아버린 기분에 이렇게 중얼거리곤 합니다. 


허무하다. 허무해.


그런데 이 말 참 무섭습니다. 순수한 감정은 아닐지라도, 무엇인가와 뒤엉켜 형체를 알아보지 못하는 감정일지라도 이 말 앞에서는 그 단단함이 무참히 부서집니다. 합금 같은 감정이 말입니다. 허름한 술집에 앉아 홀로 술을 마시는 자의 뒷모습이 이럴까요? 인생은 모 아니면 도가 돼서는 안 됩니다. 금수저, 흙수저도 좋습니다.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은 세상 살아갈 거라면 전력을 다해 살아봐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으니까요. 저는 이렇게 나의 인생을 위로하며 허무함을 달래 보는 밤을 맞이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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