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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Feb 01. 2020

핑계삼은 술

뒷모습

밤새도록, 또 마시고 말았다. 일 년 365일 취해있는 기분이다. 원한 것은 술이 아니었다. 술을 핑계 삼아 누군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거리를 걷고도 싶었다.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다르다. 같지는 않은데, 다른 사람들인데, 나만 홀로 외따로 떨어진 느낌이 든다. 낯설면서 낯익은 이 느낌이 주는 감정을 받아들이기가 쉽지가 않다. 이제 그만, 술독에 빠진 내가 깨어나고 싶다. 


오늘 밤은 술에 취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듣기 싫었다. 술도 원했다. 그래서 집에서 나갔다. 자정이 넘어 한시가 다 되는 시간 어머니는 내가 누워 자는 곳에 앉아 계셨다. 잠을 주무신 것 같지는 않았다. 어머니 등 뒤로 가서 가만히 앉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를 힐끔 보더니 손에 들고 있는 휴대폰을 만지고 있었다. 잠시 뒤 내게 휴대폰을 보여주며 하시는 말씀  "엄마, 머리 이렇게 자를까?" 내 마음은 자르고 싶으면 자르셔야지요. 하지만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어머니의 긴 머리를 보다 문득 어머니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작고 왜소한 뒷모습......

그 뒷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와 떠나질 않는다. 쓸쓸한 외로움. 난 도대체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단 말인가. 어머니는 그렇게 항상 기다리셨다는 말인가. 머릿속에 생각이 아무렇게나 자리 잡고 떠나질 않는다. 그동안 나의 이기주의에, 무한한 욕심에 어머니는 오늘도 어쩌면 자르고 싶은 머리의 비용을 계산하며 쉽게 미용실에 가지 못하실지 모른다. 나는 못난 놈이다. 


지난한 고통을 겪은 뒤 꽃이 피면 무슨 소용인가
시들어 버릴 꽃, 영원의 고통은 기껏 꽃으로 회복할 수 없는 어둠이다
어둠은 이미 꽃의 향긋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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