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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현 Mar 15. 2020

우울한 날

어렸을 적, 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무렵 시계를 한참 동안 멍하니 들여다보곤 했다. 하루가, 아니 한 시간의 흐름이 너무나 길었던 까닭이었다. 가만히 앉아 시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나와 달리 부모님은 시간이 참 빨리도 지나간다라고 말하며 삶이 주는 노동의 고단함을 말하곤 했던 것 같다. 그 무렵의 나는 어리기도 했지만 그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에게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의 영원함이 무척이나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계를 들여다보는 만큼 달력의 숫자를 무수히 세어보기도 했다. 하루가 지나면 한 달은 며칠이지? 그럼 한 달이 또 지나고 계절이 바뀌어 일 년이 지나면 하루로 며칠이나 되는 거지? 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들이지만 내가 알지 못한 사실 하나는 그 시간만큼 삶이 주는 고단함이 그대로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축적된다는 것이었다. 


현재의 내가 지나온 과거의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라는 물음을 요즘 들어 종종 해보곤 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가라앉은 생각을 낚시질해 끌어 올리 듯 가만히 건지면 다듬어지지 않는 덩어리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온전치 않고 그다지 볼품없는 형태로. 심지어 악취가 날 거 같기도 한 그 모습은 나에게 종종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둠을 주기도 하는데 그것은 현재의 나의 모습을 일그러뜨려 우울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보통 과거의 어떠한 시간에서 발생한 좋지 못한 기억이 불쑥불쑥 찾아와 우울한 감정에 빠진 나를 보곤 한다. 또 시간의 더께가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당시의 내가 어땠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모습에 스스로 상처를 내기도 한다. 내가 저지른 잘못이나 실수는 흐른 시간만큼이나 뻔뻔함으로 변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받은 상처는 용서하지 못한 미움으로 남아 있다. 비겁한 삶이다 싶으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나는 우울함에 빠져있다.


우울한 감정에 빠진 나는 이 감정의 일부를 나의 아버지에게 돌려버린다. 열심히 살았다곤 하는 당신을 나는 나의 남은 생을 다 마칠 때까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 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과장될 수도 있겠지만 단 하루도, 아니 하루의 몇 시간도 나는 아버지와 함께 보낸 좋은 기억을 갖고 있지 않다. 사랑받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우울함에 빠진 나는 다시 한번 우울함의 더께가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나의 내부에 깊숙이 자리 잡고 만다. 


그래서 때론 두려움이 나를 집어삼키곤 한다. 미움과 분노가 가득한 마음을 평생 간직 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왔다. '남은 생은 벌을 받으며 지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끔찍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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