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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Mar 06. 2022

69세의 지혜

오늘보다는 내일이! 

퇴사한 지 80여 일 언저리


퇴사를 확정했을 때, 회사의 최고령(당시, 68세) 수석님과 점심식사를 했다. "갈 곳도 정하지 않고 무턱대고 퇴사하는 거 아니라며, 나의 퇴사를 만류했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아무것도 하지 말고 쉬고 오라고 했다." 한국은 나이 듦을 터부시 하는 문화가 있지만, 단단하게 나이 든 어르신들은 척하면 척이다. 얼굴만 봐도 견적을 낼 수 있는 사람이 그들이다. 아마, 이 친구가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됐는지? 회사에서 대략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등 등이 짐작됐을 것이다. 단 세 마디만 말해도, 퇴사를 결심하게 된 지정학적 구조와 역학을 파악하고, 근 거리의 미래까지 예측하는 뜻한 말을 하는 경지. 소위 말해 지혜의 영역이 이런 것 아닐까? 한다.


어쩌면, 그날 나는 마지막으로 수석님의 지혜를 구하러 갔던 건지도 모른다. 낭창하게 웃으면서, 전화로 퇴사 사실을 말했던 나! "수석님! 저 퇴사해요! 이번 주까지 출근해요! 퇴사하면, 퇴사자 점심 식사 초대해주세요." (수석님은 퇴사한 사람들과 식사를 하며, 퇴사한 사람들을 챙기고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퇴사 마음을 접을 여지가 없음을 확인한 수석님은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1권, 2권을 pdf파일로 첨부하여 메일을 보내주셨다. 그리곤, 로마인 이야기에 관한 일장 연설이 이어졌다. 한 번 시작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풀어놓는 분이셨기에, 열심히 들으려고 노력했다. 길고 긴 이야기가 종착점에 도달할 때 즈음 수석님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지는 해고, 자기는 이제 뜨는 해니까! 미래만 생각해!!" 


주말 내 포트폴리오를 가다듬고, 틈틈이 이력서를 쓰고, 채용공고를 탐색하며 불안한 마음이 들 때마다, 난 종 종 수석님의 말을 상기하고 또다시 기억해 내려고 노력했다. 미래만 생각해,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 보다 그다음 날이, 그리고, 이번 달 보다 그다음 달이 더 좋아질 거야! 


미래만 생각해!

어쩌면, 참 복 많은 나인데, 오는 복들을 다 걷어차고, 내 생각의 '고정관념'과 내 성격의 '고집'에 갇혀 한 발작 국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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