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엉 May 07. 2023

번아웃에 우울증과 싸우는 사람의 방.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기로 했습니다.


01 더러운 방에 대한 자비로움

저처럼 우울증이나 소진 증후군에 빠진 사람들의 방은… 비교적 정상인의 방보다 더럽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방을 둘러봅니다. 2주째 상한 음식들이 냉장고에 있고, 일주일 동안 쌓인 빨래도 한가득입니다. 이불 빨래는 2달 전에 한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베개를 보니,,, 배겟잎이 누렀습니다.

옷장의 옷도 제멋대로 나뒹굴고 있고요. 이런 환경을 보면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회사에서는 은근 왕따이고, 매일 팀장이 내 자존감 갈아먹는데… 난 집에서도 제대로 쉴 환경조차 가지지 못했다. 는 그런 기분에 힘들었습니다. 난 늘 이렇게 밖에서 회사라는 공간에서 시궁창을 헤매는데… 말이죠. 하지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합니다. 집 안일도 딱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당분간 그렇게 살자고 다짐합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지금 이것 그대로 너무 애쓰고 있다고…


“악어야, 아픈데, 무슨 청소니…? “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도 꽤 오래 걸렸습니다. 더 이상 더러운 방을 보면 화나지 않습니다. 어질러진 빨래 속에서 다음 주에 입고 나갈 옷만 세탁하려고 합니다. 재활용은… 꽤 노동이어서, 2주 전에 버리려고 정리해둔 것만 버리려고 합니다. 냉장고의 음식물 쓰레기가 … 걱정인데요… 오늘 저녁에 남은 힘이 있다면 다 꺼내어 비워 보려고요. 없다면, 다음에 해보려고요. 음… 식사가 문제인데요… 역시 당분간은 마 0 컬 0에서 반찬과 국을 주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방이 더러워도. 그것 그대로 괜찮습니다.


02. 빈약해지는 통장 잔고에 대한 자비로움

매주 상담으로 7만 원을 씁니다. 정신과 치료도 병행하고 있어… 초진비용에만 5만 원이고, 그 이후는 2만 원입니다. 주당 병원비에만 10만 원을 쓰고 있습니다. 적고 보니… 전 정말 아픈 사람이 맞나 봅니다. 한 달에 100만 원은 꼭 저축하고 싶었는데… 이번 달도 어렵겠습니다. 가정의 달 5월… 어버이날을 기념해서 동생들과 돈을 모아 약소하게 용돈 드리기로 했습니다. 꽃값, 케이크값, 용돈 12만 원… 이 통장에서 나갈 예정입니다. 억지로 가계부를 쓰고 악착같이 돈을 아낄까? 도… 생각했습니다. 통장 잔고에서 현재 가용할 수 있는 현금을 봅니다… 최소 100만 원 ~ 150만 원… 하. 미친척하고 퇴사를 하고. 퇴직금으로 유럽여행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별 별 생각이 다 듭니다. … 그리곤,


악어야…. 한 달 저축 좀 못하면 어때? 그 돈 그냥 좀 쓰자. 돈이야 또 벌면 되잖니?

 돈을 쓰기로 했습니다. 마음에 부담 없이 병원비를 내고,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려고 합니다. 돈 쓸 때마다... 아까워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03 연차에 대한 자비. 

전 올해 팀이 바뀌고. … 단 한 번도 연차를 쓰지 않았습니다.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자가격리 기간에도… 쉬지도 않았습니다. 사용할 수 있는 연차가 15일입니다. 팀장이 지랄을 하고, 팁원이 불편한 내색을 해도, 내일 출근 하자마자 연차 일정을 내리 박기로 했습니다.


“악어야, 지금 환경에 너에게 너무 좋지 않아, 지금 남 눈치 볼 때가 아니야! 쉬어야 하고 가능하다면, … 환경에 변화를 줘야 해. 당장에… 조직이동은 어렵겠지만, 재택근무를 … 강원도나 제주도 같은 곳에서 할 수도 있는 거고, 요즘 유행하고 있는 워케이션… 너도 해보는 거야! “




04 팀장에 대한 자비? 는 아직 너무 어렵군요

사실 저는 다음주가 조금 기대됩니다. 임원님께 번아웃 … 임을 오픈한 상태이고, 당장 다음 주 업무 분량이 또 늘어난다고 합니다. 저의 잣은 실수에 대해 부리나케 달려오더니… 저를 살짝 밀치며 “예를 진짜 어떻게 해!!! ”라고 짜증스럽게 말하는 팀장. 이게 인간인가요? 짐승이죠. 이 짐승 같은 팀장은 또 다음 주에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전 과연 이 짐승에게 오늘 오후 5시에 정신과 진료가 있으니, 잠시 외출하겠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정녕. 저는 정신과 진단서를 끓고 인사팀과 면담을 하고 휴직계를 내야 할까요? 출근을 앞두고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만, 정신과 약은 꼭 챙겨 먹고… 나만 생각하면서 존버하려고 합니다.


팀장이 제게 그러더군요. 상황 파악, 분위기 파악 자체가 안 된다고… 업무 내용이 기억이 안 날 때가 종 종 있고, 불안, 우울, 강박, 사회관계, 스트레스, 그 모든 영역에서 “상”등급을 받고, 너무 졸리지만 정신과 약을 먹으면서 버티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팀장 니 년의 개 진상까지 받아주고 있는데… 내가 제정신이면 이상하겠지?


넌 지옥 가고. 난 정신과 진료받으러 갈게





매거진의 이전글 정신과 약을 먹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