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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May 09. 2023

번아웃의 일상.

세상에 못 된 직장 상사 참 많습니다. 

어제 정신과 진료실을 찾았습니다. 월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겉보기에 건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정신과를 방문합니다.

2장의 설문지를 또 합니다. 그리고 진료실로 들어가 20분 정도… 선생님과 대화를 하고 2주 치 약을 한 뭉텅이 받고 나왔습니다. 진료비는 28000원입니다. 2주 치약값과 20분 대화? 진료…를 생각한다고 해도.. 일반 병원에 비해 비싼 것 같기도 합니다.


진료실에서 대화 

의사 선생님 : 악어씨 지난 한 주 어떠 셨어요.


악어 : 약을 먹고 나서 이틀 정도는 많이 졸렸었는데, 잡생각도 없어지고, 마음도 편하고 조금 좋아진 것 같아요. 평소에 화가 정말 많았나 봐요. 잘 몰랐는데, 화도 잘 안나고요. 그런데… 화사에서 대인관계가 고민이에요. 일도 일이지만, 하루에 2~3번 정도 퇴사하고 싶다… 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지난주 금요일 아침 9시 30분에 출근해서 9시에 퇴근했는데,… 밥도 못 먹고요. 제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출근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편해요.


의사 선생님 : 왜? 불편할까요?


악어 : 직장 동료들이 불편하고, 일도 재미없어요. 2월에 팀이 생기면서… 제 업무도 바뀌었고, 팀장도 정말 저랑 맞지 않는 사람이고, 팀원들도… 뭘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랑 동갑인 팀원이 다른 팀 팀원, 팀장들이 있는 공용 공간에서 소리 지른 뒤로 모든 것들이 엉망진창이에요. 이런식으로 회사에서 큰 소리가 나는 걸 정말 싫어하는데… 정말 용납할 수 없는데, 제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어요. 그 이전에는 팀원들과 관계가 괜찮았어요. 팀장은 팀 분위기 망치는 게 저이고, 다 제 탓이라고 말하는데… … 이게 왜? 제 탓인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요. 다 팀장 탓 아닌가요? … 팀원도 꼴 보기 싫고, 팀장도 싫고, 일도 딱히 재미없어요. 그래서 점 점 회사가 싫어지고, 퇴사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늘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 : 어떤 일이 생길 것 같나요?


악어 : 제가 의도하지 않은 실수나… 그 실수로 인해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요. 갑자기 급하게 업무를 해야 한다거나… 그런… 제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의사 선생님 : 완고한 직장 상사. 원하지 않았던 업무. 구리고 높은 업무 강도 등 등… 이런 것들이 악어씨를 괴롭히고 있군요.


(중략)


사실.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특별히 나아지는 것은 없습니다. 다 제가 풀어가야 하는 숙제들이지요. 다만, 20분이라는 짧은 대화를 하고 나면 후련합니다. 그리고, 가끔 생각을 달리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과 다음 진료일을 약속하고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상담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냅니다.)


악어 : 샘. 저… 저는… 회복도 빠른 거 같아요. 심리 검사지 지난주에 30점 나왔는데, 오늘 병원에서 다시 해보니… 20점대로 내려왔어요. 이 몹쓸 번아웃이라는 병에… 8시간 자고, 일정 시간 햇빛을 쬐고, 삼시세끼 단백질과 섬유질 위주로 잘 먹는 방법 밖에 없는 거 같아요.


상담 선생님 : 모범 학생이군요.


악어 : 샘. 근데요. 진료실에서 20분 동안 의사 선생님과 대화하는데… 그냥… 전 직장, 전전직장에서 경험했던 대인관계의 어려움까지 다 밀려오는 거… 있죠… 문제는 저일까요?


상담 선생님 : 악어씨, 제가 보기에… 병원에 가야 할 사람은 악어씨 팀장님이세요. 흠. 그리고 지금 악어씨에게 필요한 건 같은 상황을 다르게 보는 것과 일을 쉬고 다른 일을 하는 것!이에요.


악어 : 샘. 역시 일을 쉬어야 할까요? 진짜… 동남아시아 해변가 바닷속에 누워서 햇빛 쬐고 싶어요.


상담 선생님 : 멋진데!! ^^


악어 : 진짜… 미친척하고 인사팀 면담까지 갈까 봐요. 병원비… 회사가 주는 것도 아닌데, 너무 억울해요.


정신과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보통 2주 차에 서서히 약효과가 난다고 합니다. 우울증과 번아웃에 쉬는 것 말고는 딱히, ... 그렇다할 약이 없다고 합니다. 오늘 오후, 50에 접어든 아는 언니의 카톡이 도착했습니다. "악어야! 잘 지내니?, ... 우리 남편이 번아웃이 와서 회사를 쉬게 됐는데, ... 25년 동안 가정을 위해 회사만 다닌 사람이라 ... 쉬지 말라고 말을 못하겠어!, ... 근데, 나도 직장내 괴롭힘으로 악어 너처럼 정신과 다니고, ... 두 달동안 약 먹은 적 있어!"


언니, ... 도대체, ... 세상에 못 된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 거죠! 

그리고, ... 번아웃으로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구요! 더 짜증나는 건, 직장내 괴롭힘을 일삼는 직장 상사나, 직장 동료는 자신의 행동이 '괴롭힘의 범주'에 들어 간다는 것을 모른다는 거에요!!!!!!!!!! 정말 화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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