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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엉 May 21. 2023

번아웃과 코로나와 그리고 정지하는 마음

일상의 회고

주말에는 정신과 약을 먹지 않습니다. 정확히 토요일은 먹지 않고, 일요일부터 다시 정신과 약을 먹기 시작합니다.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고,...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은 후, 몇몇 지인들은 본인들의 정신과 약 복용기를 솔직하게 공유하기도 했고, 약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지난 4월 11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고, 18일에 자가격리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부터 시작된 생리와 함께, 인후통과 기침, 콧물, 가래 등으로 고생 중입니다. 그런데, 지난달에 비해, 그리고 평소에 비해 생리량이 현저히 줄어든 것 같습니다. 심지어 토요일부터는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참 힘듭니다. 새벽 2시 잠에서 깨어나, 침대에서 들썩이다가, 새벽 5시 즈음 간신히 다시 잠들었습니다. 최소 8시까지 자야지! 했는데, 눈 뜨니... 6시 49분입니다. 다시 자려니,... 참 힘이 듭니다. '빌버넷', '데이브 에번슨'이 공동으로 쓴 [일의 철학]이라는 책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제4장 '우리는 왜 일하며 번아웃에 빠지는가' 부분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번아웃'이라는 심리 기제의 이전 단계를 '압박감'이라고 표현한 빌버넷과 데이브 에번슨은 이 압박감을 다시 두 갈래로 나누어, [행복 압박감]과 [히드라 압박감]으로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두 가지 압박감에 대한 완화 방법을 설명하기 전, '번아웃'의 정의와 증상에 대해 소개한 후, 절대 '번아웃'의 단계까지는 진입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부의 문장을 읽는 순간, "아,...
나 지금 좀 심각한 거구나!" 하는 지각을 또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곤, 정신과 약을 빈속에 밀어 넣을 수는 없어서, 냉장고를 열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곤, 미쳐 버리지 못한 한 달 전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냉장고 문을 살며시 닫고, 싱크대 쪽으로 시선을 옮겼습니다. 역시! 며칠 전부터 쌓인 그릇, 냄비, 수저 등이 보입니다. 설거지 거리들이 수북이 쌓인 싱크대 쪽으로 다가가니... 5~8마리 정도의 날 파리들이 화들짝 놀라 일제히 움직입니다. 그리곤, 다시 복도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 하... 집안에 내다 버려야 하는 재활용 쓰레기와 박스,... 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요! 


이전에는 주말이 되면, 대청소를 하고 가구 배치도 후딱 바꿔 버리고, 냉장고의 선반을 모조리 꺼내어 씻고, 건조하고 말리고, 냉장고 구석구석을 닦아내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에너지도, 심지어 그렇게 해야지! 내지는 그렇게 할까? 하는 생각도 안 듭니다. 


번아웃 때문인지? 정신과 약 때문인지? 아니면, 코로나 휴유증일까요? 원인은 모르겠지만,... 뭔가 결정하고, 실행하기 까지 무척 어렵습니다. 막상, 생각한 일을 진행한다고 해도, 마무리 짓기가 다시 구만리 같습니다. 


(중략)

우선,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섭니다. 


그래, 힘든 거야. 너무 지친 게 맞아! 오늘은 4주~3주 전에 쌓아둔 이미 상해 버린 음식들을 꺼내서 버리자. 딱 거기까지만 하자! 그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차곡차곡 정리해서 작은 박스에 담은 다음, 작은 박스가 다 채워지면, 딱 그만큼만 버리자! 나머지는 다음 주에 버리면 될 거야!! 물론 음식물 쓰레기 들도,... 오늘 못 버린 것들은 다음에 또 버리면 돼! 걱정할 일이 아니야! 딱 1시간 정도만 청소라는 걸 해보는 거야!


산책을 하고, 마트에 들러 아침으로 먹을 요거트와 쓰레기봉투, 그리고 싱크대 배수구 세정재를 샀습니다. 부슬부슬 비가 옵니다. 정신과 약 딱 1달만 먹으면, 괜찮아! 질 거야!! 했던 이 몹쓸 번아웃이 생각 보다 더 오래갈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번아웃이 오래가면 또 뭐, 어때... 이번 기회에 '딱 그 만큼만, 멈추는 방법을 익혀 보는 거야!' '악어야, 넌 좀처럼 아니, 아예 멈춰본 적이 없잖아!' '이건 또 다시,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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