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적 퇴사를 생각해 봅니다.
제가 먹고 있는 약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아침에 2알, 저녁에 자기 전 1알의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데… 알고 보니 한 알은 항우울제이고 나머지 한 알은 불안 장애를 완화해 주는 약이었습니다. 약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찾아보았죠. 구역, 구토감, 식욕 감퇴, 집중력 저하, 졸음증, 무기력감 등이었습니다. 정신과 약 복용 2달이 다 되어 갑니다. 솔직히 걱정되기도 합니다. 중독되는 건 아닌지? 이 약이… 단약은 가능한 건지? 등 등에 대해서요. 굳이, 부모님께는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부모님이었다면, 부모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 회사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팀장 머리카락을 다 뜯어 버렸을 겁니다.) 정신과 간호사 선생님은 "담당 선생님이 약도 빨리 끓는 편이라며. 약 꼭 잘 먹으라고 격려해 주셨지만,..." 그래도 정신과 약에 대한 은연중의 거부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항우울제 용량이 2배로 늘어난 이후.
항우울제 2배 용량에도 불구하고, 회사만 가면 울화가 치밉니다. 역시 화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참기 우려운 졸음이 쏟아집니다. 너무 졸려서 이번주는 서서 일했습니다. 업무 집중도와 속도는 느려졌습니다. "주변 팀 팀장들과 싸우고, 정신과 약 먹고 있는 애를 왜? 새벽까지 일 시키냐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광고까지 해주신 팀장은 요 며칠 사이 임원님에게 많이 깨졌는지? 조용합니다. 그리고 그 팀장은 이제야 팀 공용 폴더를 만들고, 누군가 휴가를 가면 업무 대체자를 지정하여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프로세스를 정립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팀장을 '병신'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정신과 약기운에 아주 간단한 업무를 해내지 못하는 저를 보고 득달 같이 달려들어 “진짜 예를 어떻게 해!!!” 라며 언성을 높인 그녀를요.
난 진짜 너를 어떻게 하고 싶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10층 사무실입니다. 임원님과 다른 팀 팀장이 서 있습니다. 순간 멍져서… 임원님과 인사를 잊었습니다. 항우울제가… 참 사람을 많이 멍지게 합니다. 임원님을 지나치자 다른 사람과 임원님이 인사 나누는 소리가 들립니다. 멍지지 만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팀장, 팀원 그 누구와도 딱히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 주 목요일 점심 팀 회식이 있지만, 딱히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내 인생에 필요 없는 사람들. 그냥 지나치는 쓰레기 수준의 사람들일 뿐입니다.
(중략)
무심하게 집으로 돌아옵니다. 금요일 연차를 쓰고, 밀린 집안일을 합니다.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의 은행 이자가 또 올랐습니다. 대출 갈아타기 또는 이사를 고민해 봅니다. 올해 연봉 인상 10%...이지만, 오른 만큼 고스란히 나가는 기분입니다. 개선할 수 있는 것과 개선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가 온 걸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지하게 심리적 퇴사를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