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에서 디자인

한반도 전라북도 어딘가

by 무엉

농촌에서 디자인?

몇몇 지인에게 도시와 농촌을 아우르며 사는 삶에 대해 말했을 때, 이들의 반응은 2:8의 비율로 나뉘었다. 2명은 신기해했고, 8명은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뜯어말리는 뜻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또, 이들은 세 갈래 정도의 의견으로 나뉘었다. "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커리어와 더 넓게는 나의 미래 그리고 인생에 대해" 걱정해 주는 이들이 있었고, "농부 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지?"라는 의심 가득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나머지는 "*농활 같은 거네~" 하며 업신여기는 뜻한 표정을 지었다. 세상의 시각이 어찌 되었든, 농촌에서 디자인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실행한 계기에 대해 고백해본다. (참고. 농촌에서 디자인을 하는 것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니다.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많은 선배 디자이너들이 농촌을 주제로 많은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해왔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떠, 창문을 열었을 때, 무엇이 보이는가? 남의 집 베란다, 혹은 남의 집 창문, 누군가는 남의 집 담벼락이 보일 수도 있겠다. 거창한 이유를 덪데어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미사여구를 모두 마다하고, 솔직하게 말한다. "아침에 눈 떠 일어나 창문을 열었을 때, 숲을 보고 싶어서! 빌딩 숲이 아니라, 광활한 자연이 보이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단지 그뿐이었다.


내가 흘러들어 간 농촌. 전북

친가 외가 통틀어 전북에 연고가 없던 내가 처음 흘러들어 간 농촌은 전북이었다. "어떻게 전북에 가게 됐나요?"라는 질문이 반사적으로 떠오를 것이다. 한국을 좌측 대각선 방향 울산, 대구, 서울 순으로 살아오던 내가 어떻게 전북까지 가게 됐는지? 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디자인 이야기를 할 수 없어질 테니 가감하게 생략한다. 단 하나의 생각만 남긴다. "인간은 연이 없는 곳에 절대 갈 수 없다. 전북과 연이 있었기에 전북에 흘러들어 간 것뿐일 것이다." 20년을 살았던 경상도에서 비교적 거친 산세를 보고 살아왔던 나는, 전라도에 처음 입성했을 때, 평탄하고 유순함이 정말 신기했고, 좋았다.


한국 같지 않은 언덕을 가진 전북의 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1년 3개월 동안 도시와 농촌 두 공간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열고 닫았다. 농촌에 머무르는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내가 머물며 디자인했던 곳은 전북 부안에 위치한 한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유기농 뽕나무 농장이었다. "왜 뽕나무 농장이었냐?" 하는 의문이 떠오를 것이다. "인생은 복잡한 변수가 존재하는 롤러코스터와 같다."라는 답변으로 대체하겠다.(웃음)


농촌 디자인 프로젝트의 주 무대가 됐던, 전북 어딘가 뽕나무 농장에 대한 몇 가지 설명을 남긴다. 1. 가족중심 경영체였다. 2.5월이면, 국내 최대규모 최고급 보랏빛 오디 열매가 열린다. 3. 1세대 농부(어버님, 어머님)의 농장을 2세대 농부(큰언니, 둘째 언니, 막내아들)가 이어받은 후계농이다. 4. 강아지가 사람보다 많은 농장이며, 5. 닭과 오리가 있고, 잉어 500마리가 있다. 6. 동물 애호가인 큰언니에게 구조된 고양이들 역시 사람보다 많으며 그 개체수를 알고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7. 농장의 1등 일꾼, 큰언니의 조카가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곳이기도 하고, 8. 뒷 끝없이? 싸우며, 파이팅 넘치는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이다. *참고) 농장에 관한 정확한 상호명은 생략한다.)



디자이너님. 농장에서 대체 무슨...

농촌에서 했던 디자인이 도시에서 했던 디자인과 특별한 차이가 없음을 미리 알린다. 농촌의 문화적 특성에 의해 업무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스토리를 짓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험을 만들었다. 도시에서와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