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부등변삼각형> 마지막화
결혼식 이틀 전 밤, 퇴근한 진원은 요한이 집 앞에 놓고 간 그림을 보고 감격했다.
그 그림은 요한의 사과이자 감사카드나 다름없었다. 그는 한참동안 그림을 바라보다가 그림 속 또다른 주인공인 나에게 전화했다. 나는 울 것 같은 목소리의 예비신랑을 위로해주기 위해 얼굴에 붙이고 있던 마스크팩을 벗어던지고 바로 집에서 나왔다.
진원에게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그림이 궁금했고, 온갖 사건사고가 터진 와중에도 끝내 스스로 약속했던 그 그림을 완성해낸 요한의 심정이 어땠을까 생각했다. 생각만으로 목구멍이 더워졌다. 진원의 목소리가 젖어있던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웃으며 나를 맞았지만 진원은 울었던 것 같았다. 그가 아닌 척하기에 나도 모르는 척했다.
언제 또 이렇게… 너무 잘 그렸다. 사진보다 훨씬 좋은데?
나는 거실로 들어서는 통로 벽에 기대어 세워진 그림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흑백의 연필화였음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색감에 보정이 잔뜩 들어간 스튜디오 사진들보다 훨씬 더 눈에 들어왔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에, 본식사진은 보정이 거의 없다는 경고에, 인생에서 가장 예쁘고 빛나는 모습을 연예인들 화보 찍듯 할 수 있다는 호기심에 진행한 웨딩촬영은 어떻게 진행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수많은 원본사진들 중에 앨범과 액자로 인화할 사진을 고르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르고 고른 사진들보다 요한의 그림 한 장이 좋았다. 나는 결혼식장에는 물론이고 신혼집에도 가장 목이 좋은 곳에 그 그림을 두어야겠다고 말하려고 진원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는 손목으로 눈가를 가린 채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왜… 피곤해? 그만 쉴래?
내가 옆에 앉으며 말하자 진원은 상체를 굽혀 양손을 무릎 위에 놓으며 입을 열었다. 나를 보지 않는 채였다.
잘 받았다고,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못하겠어.
왜.
속 좁은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용감하게 굴겠다고 해놓곤 너무 찌질하잖아.
진원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말 할 만큼은 자기 용감해.
나는 조금 웃으며 말했다.
재결합이라고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어쨌든 다시 밤을 다투어 몸을 나누며 마음을 확인한 후로는 진원은 우리 둘의 앞날에 대해서는 더는 불안해하지 않았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직은 피차 의식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단계이긴 해도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우린 믿었다. 그런데 그 불안을 진원은 아직 요한과의 사이에서는 미약하게나마 갖고 있었고 그 심정을 장례식 직후 내게 토로한 바 있었다.
그때 진원에게 말했듯, 그가 요한을 용서한 김에 좀 더 너그러워졌으면 하는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의 번뇌에 나 스스로 일조한 바가 있었고, 가까스로 제자리로 돌아와 결혼식을 불과 이틀밖에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또다시 요한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지난 여름의 일들이 없었다면, 내가 아는 진원은 아마도 그 그림을 들고 내게 바로 찾아와 요한의 솜씨와 그와의 각별한 우애를 자랑하며 까맣고 맑은 눈동자를 빛내며 마냥 기뻐하고 자랑했을 것이다. 아니면 그 길로 요한에게 달려가 기특한 자식… 이 형님 무지 기쁘다, 따위의 닭살스러운 멘트를 날리며 그가 만들어주는 축하주를 즐겼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요한을 찾아가기는커녕 전화 한 통 못하고 내게 연락했다.
그들 둘만의 일이었다면 마치 연인인 양 사랑싸움하고 실랑이하고 밀당하는 모습처럼 느껴져서 귀엽고 조금은 질투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까지 셋이 얽힌 일이었고 진원은 특히나 장례식장에서의 만남 때문에 요한에 대한 마음이 갈팡질팡하는 것 같았다. 당연했다. 진원이 나를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요한을 사랑했으므로, 그가 우리 둘 모두를 포기하지 못했으므로 겨우 봉합된 일이었다. 이제 고작 몇 달이 지났을 뿐이다.
솔직히 말해 그동안은 자기 요한 씨한테 제대로 화내기 힘든 상황이었잖아. 이젠 그 사람 처지가 좀 편안해지니까, 또 한동안은 못 볼 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뒤늦게 심통 부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
내 말에 진원은 그저 나를 보았다.
뭐 어때. 요한 씨도 이해할 거야.
나는 진원을 안고 등을 토닥여준 다음 명랑한 얼굴로 괜한 생각 말고 자기도 그만 씻고 자, 내가 준 팩 꼭 해, 잔소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진원이 호출해준, 이틀 후면 나의 본가가 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장례식장에서의 요한을 생각했다.
그날 그곳에서 사람들 앞에서는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창백한 안색의 요한을 보았을 때 나는, 그저 어떡하냐, 할 말이 없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건강 잘 챙겨야 해요… 그런 진부하고 관용적인 말들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래서 아무 말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린 것이었는데, 그가 스스로를 다치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많이, 끝도 없이 눈물이 나왔다. 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그 어느 장례식장에서보다 나는 더 많이 울었다.
그토록 찾고 싶어한 어머니는 한 줌의 재로 돌아오고 그토록 미워한 아버지는 맏상제로서 마지막 가는 길을 모셔야 하는 요한의 기 막힌 처지가 더 마음 아파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는 게, 고작 2시간을 차로 달려가 엇비슷한 시간 동안 울기만 하다 다시 밤길을 달려 돌아오는 것 밖에는 없다는 현실도 나는 너무 아팠다.
지난날 그런 불미스러운 일만 없었어도 말이라도 한마디 건네고 하다 못해 손이라도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진원이 원했듯 우리 셋이 모두 친구처럼 지낼 수 있었으면 나는 그의 마른 손이라도 잠시 잡아줄 수 있었을 텐데, 요한과 나는 서로 깍듯이 절은 할지언정 손가락 하나도 닿을 수 없었다. 바로 옆에 진원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있었지만, 설령 단 둘이 있었다고 해도 나나 요한이나 그렇게밖에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보다 1시간 정도 늦게 문상 온 연주는 오빠 어떡해, 오빠 불쌍해서 어떡해… 요한을 부둥켜안고 하늘이 무너져라 통곡했다. 그 모습이 일순 부러웠다는 말을, 나는 끝내 진원에게 하지 못했다. 장례식 후 진원이 내게 복잡미묘한 감정들을 털어놓을 때에도 나는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이미 혼란스러운 진원의 감정상태에 조금이라도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거니와, 그야말로 코앞에 닥쳐온 우리의 결혼식에 조금의 불똥도 튀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나는 나의 결혼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나로 돌아와버렸다.
장례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연주는 내게 문제의 동영상을 진원의 어머니께 발송해버린 것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다. 나는 당연히 많이 놀랐었고, 양가 부모님 사이에서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잘된 것 같다고 간단하지만 사실대로 답했다. 나보다도 눈이 더 붓고 콧구멍 주위까지 벌게진 연주의 얼굴은 안쓰러웠다. 설령 그애를 용서하지 못했더라도 그 모습 앞에서는 사과를 받아줄 수밖에 없는 수준이었다.
너 정말 포기했니? 요한 씨 말이야.
내가 조심스레 묻자 연주의 되물음이 용수철처럼 튀어올랐다.
왜, 거짓말 같아?
사람 마음이란 게… 쉽게 포기되는 게 아니니까.
그러는 언니는 정말 조금도 요한 오빠한테 전혀 안 그랬단 거야? 어떻게 그래?
나와 합석하겠다고 고집을 피워 그 친척언니 옆 조수석에 탄 연주가 몸까지 돌려가며 내게 되레 물었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연주처럼 소리내어 마음껏 울지는 못했어도 꽤 많이 눈물을 흘린 탓에 기운이 없기도 해서, 나는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다.
어쩌면 조금은 사랑했는지도 모르겠어.
뭐?
나는 옅게 웃었다.
네 말처럼 그렇게 예쁜 사람한테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어. 하지만 결국엔… 이성보단 인간적으로 더 사랑했던 것 같아. 그리고 깨달았지. 내가 여자로서 남자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고 앞으로 평생 함께 살며 자식을 낳아 기르고 싶은 사람은 한 사람뿐이란 걸.
그래, 언니 입장에선 땡잡은 거니까.
연주의 언니가 동생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요한 오빠가 언니네 오빠만큼 공부도 많이 하고 직업도 좋고 돈도 많았어도 그랬겠어? 정말?
…요한 씨하고 비슷한 말을 하는구나.
나는 그의 말을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그에게는 다른 결정적인 이유가 있어서 굳이 할 필요가 없었던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지난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는 거잖아. 내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쌓으며 사랑한 사람이 진원 씨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 그러니까 소위 조건이 비슷했다고 하더라도 그렇진 않았을 거야. 같은 조건이고 먼저 만났다면? 그랬으면 또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 근데 뭐 그건 가정일 뿐이지. 지금은 지금의 일을 해야 하는 것뿐이야.
요한을 찾아가 만났을 때 했을 수도 있던 말을 연주에게 하면서, 나는 다시금 마음이 정리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일이, 마침내 이렇게 마무리되는구나. 앞으로는 심심할지언정 그런 일은 다시는 겪고 싶지 않아. 그리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행복해져야지. 그리고 그 누구보다, 진원과 나 우리 둘보다, 요한 씨 당신이 더 많이 행복해졌으면. 이제 더는 울지 말고 더는 스스로를 해하는 일따윈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불행했던 그 이상으로 행복했으면.
나는 온 마음을 다해 기원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요한의 불행은 마침내 끝이 났다는 확신이 들었다. 반면 나와 진원의 앞날은, 엄밀히 말해 알 수 없는 미래였고 이제야 겨우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두렵지 않았다. 사랑하는 진원과 함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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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원은 갈팡질팡하는 제 마음 대신 그런 어른스럽지 못한 마음과 언행을 요한은 이해해줄 거라는 나의 말은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그냥 되는 대로 계속해서 요한에게 불퉁스럽게 굴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다 부친의 말처럼 결혼식날부터는 요한을 전처럼 친형제로 받아들일 생각이었는데, 밀려드는 손님들과 인사하느라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그러다가 가족사진을 찍을 때에야 그 결심이 생각났다고 나중에 내게 고백했다.
다 오신 거죠? 사진사가 확인차 마지막으로 물었을 때 진원이 잠시만요, 라고 손을 들었다. 그러더니 성큼성큼 요한에게 다가가 그를 끌었다.
야, 왜 이래… 요한이 당황해 속삭이자 진원은 사람들 다 쳐다본다… 역시 속삭였고 요한은 고개를 푹 숙이고 그의 손에 이끌려왔다. 그제야 나는 그의 짧은 머리를 알아보았다.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그의 불행과 방황이 잘려나간 그의 머리카락처럼 그에게서 떠나간 것만 같아서. 아니 그 스스로가 슬프고 아팠던 과거를 떨쳐버리기로 결심했다는 증명이어서. 또다른 증거인 그의 정성어린 그림을 마주했을 때처럼 나는 그가 몹시도 고마웠다.
요한은 비로소 얼굴을 드러내며 나에게 축하해요, 수줍게 말을 건넸고 나는 웃으며 답례했다. 머리를 승려처럼 바짝 깎았어도 그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아니 처음 만났던 그때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때와 달리 내 심장은 그의 미모 때문에 빠르게 박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더는 그에게서 연한 장미꽃 내음도 맡아지지 않았다. 그저 조금 전 내 입술에 덧발라진 립글로스의 인공향만 느껴질 뿐이었다.
나는 곧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내 옆에 선 나의 멋진 새신랑에게 칭찬의 눈빛을 보냈다. 나의 남편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보고 싶을 거다… 옆자리에 요한을 세우며 진원은 고백하듯 말했고 그때서야 요한은 미소를 지었다.
우리 세 사람은 마침내 웃으며 다시 만났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진사의 구령과 함께 영원으로 담겨졌다. Ⓛ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