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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을 꿈꾸는(?) 범인

日常有感 - 9. (라고 쓰고 넋두리라고 읽음)

by 지구인



세종대왕은 정말 대단한 분이다. 기득권의 최고위에 있으면서 어찌 문자의 독점을 포기할 생각을 했던 것일까.


세계에서 가장 읽고 쓰기 쉬운 글자를 가진 덕에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잘났다고 외치는 꼴을 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만들어내고 아무 생각 없이 퍼다 나르는 각종 쓰레기 같은 정보와 주장들을 읽고 있노라면 화가 치솟는다. 제발 좀 닥치고 있으라고!! (심지어 자신이 제대로 보고 읽지도 않은 채) 무작정 퍼 나르지 좀 말라고!! 그것은 나를 낳고 기른 부모에게도 마찬가지여서,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는 배가 된다.


사랑과 존경은 다른 것인데, 내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는 대상은, 아마도 없다.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은 더 경멸하는 것 같고, 그리하여 살고 싶어 하는 것보다 아주 조금은 더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며, 세계를 정복하고 지배하고 싶은 것보다 아주 약간 더 아주 아름답고 조그만 나만의 성에 갇혀버리고 싶다. 내게조차 그러하므로 타인에게 그러한 것은 당연한 순리이다?!


세종대왕을 존경하지만 그의 모든 것을 그러하지는 않다.


그의 천재성과 창의성과 근면함과 애민정신을 존모하지만 그의 편식과 남성우월주의와 부친의 용의주도함에 못 미치는 후계갈음 따위는 그렇지 아니하다(그럼에도 후대의 정조를 그에게 비교하는 것은, 당시의 정치상황을 고려하더라도 말이 안 된다: 세도정치는 안동김문 이전에 정조 임금 자신의 포석이었다!). 그러나 그의 한글창제는, 설령 그가 암군에 폭군이라 종국엔 폐주가 되었더라도 길이길이 남을 위업이므로 나는 그저 그에게 마음을 다해 머리를 조아리고 맨땅에 바짝 엎드릴 뿐이다. 그의 글자를 쓰는 한 우리 모두는 그의 신민이므로. 하늘과 땅과 인간을 잇는 것이 왕이라면, 그만큼 왕이라는 글자가 어울리는 ‘왕은 없다(성낙주의 소설 <왕은 없다> 참조)’.


그러나 나의 이러한 분노는 타당한가?


완결 그 자체에 의의가 있다고 애써 자위했으나 너무도 저조한 - 그러나 부지런한 홍보활동?은커녕 타 브런치북 방문조차 않는 주제치고는 성공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싶다가도 - 반응 때문에 괜히 또다시 두렵고 절망스러워서 화풀이를 하는 건 아닌가? 배부른 곳간에서 인심 나는 것처럼 말이야. 그러나 결핍에 따른 분노를 원동력으로 한 발전도 있는 법이잖아?!


다시금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와중에, 우연이겠지만 <빅뱅이론> 8시즌 10화(샴페인 성장 - 시작 후 14분)에서 이런 대사가 나왔다.


모두가 위인이 될 순 없지.
어떤(보통의/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해.
I guess the sad truth is not everyone will accomplish something great. Some of us may just have to find meaning in the little moments that make up life.

내가 생각하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는 심지어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있었다. 나는 아마도 범인보다는 위인을 꿈꾸고, 그것이 나의 슬픔의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한 그러한 야망도 나다. 포기하려고도 했었지만, 끝내 그럴 수 없어서, 그러면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어서, ‘나 하루를 살아도 나답게 살고 싶’어서, 설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후회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 길로 들어선 것인데 이제 만으로 2년이 다 되어가고 나의 삼각형은 마침내 탈고하였건만, 그 모든 꿈은 아직도 멀고도 멀어서 나는 여전히 몸을 웅크린다. 겁을 낸다. 잠들어 꾸는 꿈은 불안하고 위태하기만 해…


그래, 어쩌면 나는 그저 어리석은 고집불통에,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몽상가에 불과한지도 몰라. 그냥 그것이 내 진정한 정체성인지도 몰라. 그러나 오늘 또 알았어. 빅뱅이론의 대사를 보고 또 알았어. 나는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고 싶지 않은 거야… 그래서 이렇게 홀로이 집에 틀어박혀 있는 거야… 때로는 약한 체력을 무릅쓰고 자정을 넘기고도 한참까지 연재분을 쓰고 고치고 고민했고, 이젠 그다음에 대한 고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다.


이달 말까지는 그저 머리를 비우고 쉬려고 했는데, 그조차 쉽지가 않구나. 아, 이 어설프고 게으른 목표지향주의자여, 완벽주의자여!! 이렇게 살다 죽을 어리석은 이여!!! (내 팔자여어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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