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18.12.29)

by 바다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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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떨결에 신체검사 재검 받으러 갔다. 결과는 높은 가능성으로 다음 검사때 현역이 보장된 7급 재검사 등급이다. 절망적이었다. 병원을 아파서 가기도 했지만, 공익 가려고 온갖 발버둥 다치면서 비싼 검사도 받고 약도 먹고 상담도 받았는데 결과가 고작 현역 6개월 유예라니 너무 슬펐다. 세계에서 제일 불쌍한 표정으로 담당 의사를 쳐다봤지만 씨알도 안먹혔다. 하지만 이내 의사의 말이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수긍했다. 내가 26년 인생 중에서 25년을 멀쩡히 살다가 (서류상으로) 어떠한 계기로 갑자기 병을 얻어서 6개월쯤 넘게 병원을 다녔다는 것인데, 인생에서 괜찮았던 기간이 훨씬 길기 때문에 치료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해서 현역을 주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 의사의 이야기였다. 크게 반박하거나 저항할 말도 떠오르지 않아서 후다닥 자리를 떴다. 이 날 원래 학교 상담이 잡혀있었는데 그것도 까먹고 있다가 늦어서 택시비를 몇만원 내면서까지 학교에 도착해서 겨우 상담을 했다. 이래저래 몸과 마음과 지갑이 엉망진창이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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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징병검사지를 받아들고서 페이스북에 어디 안겨서 울고싶다는 글을 썼다. 누구라고 댓글을 달아주기를 바랬는데 다행히도 선배 두분이 응답해주셔서 어떻게 하다가 급만남이 만들어졌다. 광안리에서 만나서 광안대교가 보이는 펍에서 비싼 맥주에 맛있고 비싼 피자를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별로 이야기를 안하고 두분이 떠드는 것을 듣고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되게 즐거웠다. 예전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말하고 주도권을 잡지 않으면 불안해했는데 요즘은 듣는 것이 더 편하고 즐겁다. 선배가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3배의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하던데 예전보다 내가 에너지와 여유가 더 많이 생겨서 듣는 일을 거뜬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1초전의 나보다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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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으로는) 전 애인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냈던 문자에 자신은 함께 성장하는 연애를 하고 싶다고 했었다. 나는 그 말을 나는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 뒷걸음질만 치는 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나는 실제로 뒷걸음질 치고 겨우겨우 버티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다. 예전보다 여유나 에너지도 많이 생겼고, 아르바이트도 1년4개월이나해서 퇴직금을 받았고, 말하는 것의 즐거움보다 듣는 것을 행복을 더 잘아는 사람이 되었고, 옷도 신경써서 깔끔하게 입는 사람이 되었다. 살이 좀 쪄서 동글동글 해지긴 했지만, 나는 귀여운 것이 좋기때문에 상관없다. 나는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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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당 대의원 후보에 등록했다. 원래 공익갈지 현역갈지 애매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딱 6개월의 유예기간이 주어져서 그 동안만 하면되겠다고 생각하고 등록했다. 등록을 위해서 참 오랜만에 출마의 변을 작성하고, 나의 활동이력을 뒤져서 끄적였다. 굵직한 단체대표도 하고, 학회장도 여러번 했었다. 그 중에서도 인문학회 카르마 학회장 이라는 타이틀은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한다. 내 운동인생의 시작이기도 하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대학, 학회, 독서모임, 학습모임 등에 애착이 강하다. 계속 운동을 하면서 살고 싶고, 대학, 학회, 독서모임, 학습모임 따위를 하면서 사람들과 즐겁게 노닐며 살아가고 싶다. 그리고 시당위원장님이 대변인도 제안했는데 군대가기전까지 할 일없는 나에게 일자리를 주시려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물론 돈을 받진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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