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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10. 2019

제목미정 1.

전기와 밀양

[전기와 밀양]


몇 년전에 경남 밀양에 765kv 송전탑을 짓기 위한 투쟁이 있었다. 정부는 전기를 도시로 옮기기 위해서 아파트 10층 높이의 송전탑을 깻잎 농사짓던 마을에 짓겠다고 선언했다. 동네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을 반대했다. 언론에서는 연일‘님비’를 들먹이며 주민들을 비난했다. 80이 넘는 노인들이 매일새벽마다 산을 오르내리며 10년 동안 건설을 막아냈다.

나는 우연한 기회로 송전탑이 지어지는 마을에 ‘농활’을 가게 되었고, 송전탑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되었다. 나는 분노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주민들과 함께 싸웠다. 마지막 농성장에 경찰들과 직원들이 들어오기로 예정된 날 밤이었다. 해가 밝아오면 들어올 경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친구와 후배들과 핸드폰으로 SNS을 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할머니가 말했다.

“느그 여기 전기쓰러왔나?:
나는 말했다. 
“아니요아니요.할머니랑 같이 농성장 지키러왔지요”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느그 핸드폰도 다 전기로 움직이는거 아이가? 그렇게 전기 펑펑써가면서  여 있을꺼먼 집에 가뿌라”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놀라고 한편으로 부끄러웠다. 평범한 시골도시를 파괴하면서 무리하게 도시로 전기를 보내려는 문제에 맞서서 싸우고 있었는데, 정작  내가 쓰는 전기와 에너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밀양에가면 에너지투사로 할머니들과 함께 싸웠지만 엄청난 양의 전기를 쓰는 부산에 돌아와서는 습관처럼 전기를 펑펑썼다. 

싸움은 밀양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살아가는 도시에 몰려있는 발전소, 그 덕에 저렴하게 펑펑써대는 전기제품, 에어컨을 틀어놓고 문을 열어놓는 상점들, 저렴한 야간전기를 이용하는 공장과 그 속의 노동자들까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곳에 밀양의 문제들이 산적해있었다. 

밀양에는 결국 송전탑이 세워졌다. 부산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대구와 서울로 보내지고 있다.  밀양 할머니들은 송전탑이 세워진 뒤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에너지와 정의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싸우고 계신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잘 싸우고 있는지 의문이다. 농성장에서 핸드폰을 보며 히히덕되던 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알고 있다. 우리가 쓰는 전기는 송전탑이 아니라 밀양할머니들의 눈물로 연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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