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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 Jul 10. 2019

제목 미정 6.

비와 투쟁

[비와 투쟁]


칼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문단은 "노동자에게 잃은 것은 억압의 사슬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이니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가슴뛰는 문장으로 끝다. 하지만 현실의 노동자는 저 멋진 문장과 달리 잃을 것은 더 많고, 얻을 것은 더 적다.

노동조합들은 파업을 하면 주로 농성을 하기 때문에 야외에서 수백일을 보다. 사업장이 작으면 작을 수록, 조합원이 적으면 적을 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적으면 적을 수록 농성의 시간은 길어다. 길거리를 배회하다보면 비가 오는 날도 있다. 함께 농성을 해보면 비오는 날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임시로 만든 천막에는 물이새고, 바닥에서는 습기가 올라와서 숨만 쉬어도 습다. 얼굴과 몸은 이미 땀으로 가득다. 쌍욕이 올라올 만큼 힘들지만 지나가는 시민들이 혹여라도 볼까 욕도 못하고 꾹꾹 참고 웃으면서 농성을 이어나다.

바닥에 있는 노동자들은 또 고공에 있는 노동자들에 비하면 나은 편다. 굴뚝위, 송전탑 위 등 경찰이나 사측이 침탈할 수 없는 곳을 찾다보면 계속 높은 곳에 올라가게 되는데 그곳은 침탈로부터 안전하기는 하지만 자연재해에는 취약다. 비가 내리거나, 바람이 강하게 불면 배를 탄 것처럼 몸이 흔들리고 멀미를 하기도 다. 그렇게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땅 밑을 바라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고 다.

이렇게 수백일을 싸워서 겨우 회사로 돌아가도 주동자로 찍혀서 왕따를 당하거나, 험지로 유배당해서 고통받다가 쓸쓸히 회사를 떠나는 경우도 허다다. 목숨을 걸고 싸워도 억압의 사슬을 끊기지 않고, 세상은 커녕 자기 책상하나도 지키기 어렵다.

오늘부터 부산지하철노동조합이 파업에 돌입다. 신문에서는 불편하고 분노한 시민들의 인터뷰를 올리고 있다. 물론, 불편다. 하지만 수백억의 임금을 채용을 위해 내놓겠다고 이야기하고, 안전을 위해 신규채용을 하라고 하는 노조가 세상에 어디 있겠. 신문에는 임금인상 이야기 투성이지만, 한국은 노조법상 임금인상을 걸지 않으면 노동쟁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거는 형식적인 구호에 불과하다.

비가 오는 꿀꿀한 날이지만, 조금 길어진 배차의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잠시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시민을 볼모로 파업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파업이라고 생각하고 함께 파업하는 마음으로 몇일 보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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