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던진 차별과 혐오의 이야기가 재생산 되어 내 안에 자라고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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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부터 피부색이 어두운 편이었다. 2차 성징이 시작되기 전에는 그저 귀여운 까만콩 정도로 불렸다. 이내, 2차 성징이 시작되고 온 몸에 기름이 가득한 아빠를 닮아서 나의 온몸에도 기름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여드름이 나기 시작했다. 피부 관리라는 것을 평생 해본 적이 없어서 여드름이 나면 재밌는 놀이처럼 씻지도 않은 손으로 눌러서 짰다. 얼굴은 늘 피투성이 였고, 몇 개의 기름 덩어리들이 융합(?)해서 초거대 뾰루지가 되기도 했다. 난 그것을 또 억지로 짜냈고 거대한 구멍이 내 얼굴에 생겼다. 그런 흔적들은 지금도 내 얼굴에 남아있다. 피부 검사를 하면 그 때 짰던 여드름 자리의 모공들이 커져서 아직도 기름을 내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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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여드름이 많이 나는 나에게 위로의 말을 했다. 기름이 많은 피부가 나이들면 건조하지 않아서 좋다고 했다. 나도 엄마의 그 말을 믿고 지금은 좀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도 버티고 40대가 되면 윤기넘치는 피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피부가 깨끗하지 않다는 것이 단순히 건조하거나 윤기가 있는 문제가 아님을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알게 되었다. 어릴 적 부터 친구들은 나의 엉성한 반응이 재밌어서 끊임없이 나를 놀렸다. 화를 내면 친구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에 화를 내지 않고 장난을 쳐도 싱글싱글 웃는 내가 재밌어 보였던 것 같다. 하나 둘 작은 장난을 치던 아이들이 점점 강한 장난을 쳤다. 나의 안경을 숨기고, 부수고, 때렸다. 나는 멍이 들었고, 안경이 박살나서 수업을 듣지 못하기도 했다. 친구들은 그 모습을 재밌어했고, 그것에 저항할 힘이 없었던 나는 친구들이 나를 재밌어해주니까 괜찮은 거라고 자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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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난들은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고, 금방 끝났다. 하지만 내 피부에 대한 비난과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친구는 나의 피부를 달의 표면에 비유하면서 크레이터 같다고 했다. 누군가는 용암이 분출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고, 누구는 노골적으로 더러우니 밥 맛 떨어진다고 했다. 가장 악날했던 친구는 역겨우니까 꺼지라고, 자신의 몸에 손대지 말라고 했다. 모든 말과 행동은 웃으면서 즐겁게 친한 친구들과 있는 것처럼 포장되어서 이루어졌다.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되고 싶어서 거기에 저항할 수도 참을 수도 없었다. 그런 이야기들을 자주 듣다보니 그들의 이야기처럼 내 피부가 정말로 더럽고 역겹게 느껴졌다. 거울을 보기도 싫었고, 사진을 찍기도 싫었다. 사진에 등장하는 내 모습이 하나 같이 역겹고 보기가 싫었다.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하얗고 잡티하나 없는 피부와 얼굴을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에게 역겹다고 하지 않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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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오면서 여드름은 많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화장품도 열심히 바르면서 피부 관리도 열심히 하고 있다. 피부에 좋다는 온갖 비누와 폼클렌징, 스킨과 로션, 에센스를 덕지덕지 바르고 씻어내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낸다. 그렇게 하고나면 쫀득쫀득하고 탱탱한 피부가 보여서 기분이 좋다. 그렇게 하고 나면 이제 나의 얼굴이 좀 덜 역겹고 더럽게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뾰루지가 올라오고 살이찌고 검정색인 피부는 나를 속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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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피부가 조금 건강을 되찾고, 타인이 나에게 피부를 매개로 놀리지 않게 되었다. 스스로 만족하기도 했고, 이제 주위에 그런 사람들은 만나지 않기로 마음먹어서 정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당했던 혐오를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일을 하거나, 길을 가거나 할 때 피부가 좋지 않거나 '더럽다'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있으면 눈쌀을 찌푸리고 속으로 그 사람을 비난한다. 제대로 세수도 안하고, 관리를 안하니까 저럴 것이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인다. 어릴 적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일을 내가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서 피부가 더러운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노력해서 피부가 좋아졌으니 피부가 좋지 않은 사람을 보면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인간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 관리를 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혐오가 내 안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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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서 머리로는 알고 있다. 피부가 건강하고 건강하지 않고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함부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나쁜 것이다. 피부 관리는 자기 관리의 문제도 아니고,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조건이나 사정이 그 사람에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알고 있으면서도 어릴 적 놀림 받았던 것이 억울해서 인지, 이제 피부가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이를 놀릴 수 있는 자격이나 권력이 생겼다고 생각해서 인지 모르겠지만 매우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사람들을 차별하고 혐오한다.
더 공부하고 더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역사가 있기에 하루 아침에 갑자기 성인군자처럼 내가 모든 혐오와 차별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고, 나도 당했던 역사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고 합리화하기도 한다. 차별과 혐오는 단순히 한 번의 상처로 끝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차별과 혐오를 당했던 사람이 또 다른 약자를 찾아서 차별과 혐오를 이어나가게 한다. 차별과 혐오의 고리를 끊는 것은 내가 지금 당장 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 것이다. 또 그러다가 차별과 혐오의 마음이 생겨날 때도 있겟지만, 그 때는 또 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 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끊을려고 하는 노력은 그 뿐이다. 나도 이 글을 시작으로 차별과 혐오를 하지 않기로 마음 먹겠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어떠한 이유로 자신이 차별하고 혐오했던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 뿐 아니라 과거의 혐오 당하던 자신의 기억으로 부터 벗어나서 나 자신도 행복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