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지만, 억지로 감사합니다.

유난히 힘든 날

by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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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난히 피곤하고 지치는 날이다. 아르바이트 면접을 갔으나 점장이 없어서 이력서만 달랑 놓고 왔다. 면접을 보고 이야기를 해야 일을 할 수 있을지 합격 불합격을 알 수 있을텐데 지금은 그런 보장이 전혀 없다. 막연하게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답답하다. 생활비는 부족하고, 일은 더 해야하는데 일을 구하는 것이 영 쉽지 않다. 5월달도 또 돈에 쪼들리면서 살아가야 한다. 제발 일이 구해졌으면.


면접 가기전에 심장이 너무 벌렁거리고 불안해서 불안장애 약을 먹었다. 당장은 불안이 가라앉았지만 그 뒤로 무기력하고 몸에 힘이 없다. 불안장애 약은 복용해보니 과도하게 긴장되어 있는 몸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덕분에 불안은 가라앉고 몸은 덜 힘들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무기력해진다. '무기력'하다고 표현하긴 하지만 이것이 원래 내 상태의 수평선의 '0'에 가까운 상태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 자신은 일평생 이 무기력을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면서 살았을 텐데 참 힘들었겠다 싶다. 수고했다 나자신. 이제 조금 무기력해도 그런대로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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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애인을 만났고, 돈을 썼다. 생각보다 많이 썼다. 생활비 대출금을 쌓여가고 월급은 통장을 스쳐지나갈 것이 뻔하다. 애인은 주7일 동안 일을하고 나는 주6일동안 일을 하려고 구하는 중이다. 우리는 왜 일을 할 수록 가난해질까. 아무리 분석을 하고 말을 달아보아도 답은 하나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가난하다.


애인은 나와 함께 있고 싶어한다. 나도 함께 있고 싶다. 하지만 스스로의 집이 없는 우리는 함께 있으려면 많은 지출이 필요하다. 우리에겐 돈이 없고 사랑해도 함께 있을 수 없다. 슬프고 참담하다. 알바를 하고 골반과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면서 나와 함께 있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애인에게 '미안해' '집에 얼른 가서 쉬자' 말고는 해줄말이나 행동이 없어서 슬펐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 많아지고, 그 대신에 미안해 할 일은 늘어나는 것 같다. 미안해 할 일이 아닐 수는 있지만, 그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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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3정거장인 집까지 버스를 타고서 걸어왔다. 폰 배터리가 없어서 노래도 듣지 못했다. 가방은 너무 무거워서 어깨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계단은 어두웠지만 복도에 있는 센서등은 켜지지 않았다. 오늘은 그냥 어떤 것이든 내 의지와는 반대로 움직이는 날인 것 같았다. 샤워를 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양치질과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기초화장품을 바르고 의자에 앉았다. 애인은 가는 길에 잔다고 했는데 아직도 연락이 없다. 정류장을 지나친 것 같은데 다리도 아픈데 어떻게 하고 있나 모르겠다. 걱정이다.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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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늘도 무사히 살아내서 다행이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하루였다. 죽지않고 무사히 살아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굶주리지 않고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살아서 이렇게 억지로라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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