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차 직장인의 신상 트라우마
대내외 커뮤니케이션 규정 및 시행세칙
커뮤니케이션팀이 신설된 회사로 이직하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만들 문서들이 많다.
이직하더라도 운영되던 팀이면 그동안 해 온 레퍼런스가 있어서 그대로 하거나 조금 수정해서 진행하면 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은데, 멘땅에 헤딩은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모시고 있는 Easy 상무는 항상 말한다.
"다른 회사 것 레퍼런스로 찾아서 참고해서 적으면 될 것 같은데, 회사에 적은 다른 팀 것들 찾아서 적으면 될 것 같은데,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뭐가 항상 그렇게 쉬울까.
'그렇게 쉬우면 니가 다 적어, 그렇게나 쉬운데 왜 굳이 어려워하는 부하 직원들한테 시켜. 안그래?'라고 속으로 생각만 한다.
그녀의 말대로 찾아도 보고 주변 지인 찬스로 여러 곳을 물어봐도 대부분 커뮤니케이션 규정이나 시행세칙을문서화 한 곳은 없었고 정부기관 공기업 정도의 자료를 찾을 수 있었다. 너무 답답한 나머지 심지어 홍보인들이 모여 있는 오픈 채팅방에 700~800명의 관계자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없다고 답했다. 뭐 물론 7~800명 모두가 회신을 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 커뮤니케이션 규정을 만드는 곳이 흔친 않다는 뜻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쉬우면 본인이 다른 회사 것을 레퍼런스로 나한테 주면 되잖아. 이대로 비슷하게 쓰라고!
그럼 정말 일이 쉬워지잖아.
대기업도 2곳 정도를 물어봤는데 한 곳은 없었고 한 곳은 대외비라서 줄 수 없다고 했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요즘은 친분이 있어도 회사 규정이 있어서 자료를 막 줄 수가 없다는 걸 규정을 만들라는 사람이 모르니 답답하다.
여차저차 초안을 써서 7월에 보고를 했고 최근에 2차 보고를 했는데 적어간 규정을 하나하나 입으로 읽어보라고 했다 "제 1조 총칙, 제 1항 ~~~~"
이렇게 하나씩 읽으면 Easy상무는 지적을 하며 "다시~", "아니 다시~"라고 말했다. 매우 짜증이 난다는 말투와 세상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날 보고를 하는 동안 내 겨드랑이는 촉촉해졌다
50여 분 간 진행하면서 서너번은 "저 회사 그만두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었다.아니면 "그렇게 쉬우면 당신이 하시죠"라거나
검색해도 잘 안나오더라고 토로하면 "원하는 내용을 잘 찾는 것도 능력이죠"라고 말하는 그녀
'눼눼, 눼눼, 눼눼, 그러시겠죠'
지금까지 검색 잘한다고 치켜세움 받던 나이기에 저 말이 더 수치스럽게 느껴진다.
보고 당일은 굴욕적이라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올해 11월이면 만 15년차 직장인이 되는 나한테 적어간 규정을 하나 하나 읽어보라고 한 것은 굴욕을 주려고 했던 것인가?
높은 톤으로 땍땍거리며 하나하나 지적하고 심지어 본인이 1차 보고 때 바꾸라고 한 데로 수정해 간 것도 지적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런 일이 최근 들어 팀 미팅 때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고, 다시 설명하는 행위 자체가 피로하게 느껴져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치운다.
상무에 대한 트라우마 생겨, 그녀에게 보고해야 되는 날은 회사 가기가 싫은 정도고, 화장실을 가거나 물 뜨러 복도에 나갔을 때 그녀와 마주치고 싶지 않고 마주쳐도 불편하다 ㅠㅠ
자존감이 떨어진 것을 넘어서고 있는 것 같다. 회복 탄력성이 정말 좋은 편인데, 보고 때 마다 지적 받고, 방음도 잘 안되는 자신의 방에서 큰 소리로 지적을 해대니 바로 옆방과 앞방의 이사는 물론, 우리 팀원들도 내가 혼나는 걸 다 듣는다. ㅎㅎ
솔직히 100% 노력했냐고 물으신다면 그건 아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것인지 80% 정도 노력한 것 같다. 그래도 이렇게 지적 받을 일인가 싶디고 하다. 사람을 너무 무능하고 무능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아니 여기가 무슨 죽도록 일해야 하는 만큼 대단한 회사냐고.. 한낱 직장인일 뿐인데... 다른 팀이 적은 규정을 보니 초안정도로 적어도 될 수준이던데...
매 사에 'oo상무가 하니 다르다'는 말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녀.
아 피곤하다. 정말 피곤하다. 상사가 무서워 회사가 가기 싫은 나는 40살이 넘은 15년차 직장인 ㅎㅎ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 같은 어려움을 매일 걷기와 필라테스, 자이로토닉 운동으로 해소하고 있다는 점.
42살 직장인의 극뽁기로 글을 써야 하나...
응어리를 한 바탕 글로 적고 나니 해소가 되는 것 같다. 물론 내일부터 사흘 쉰다는...그러니깐 그녀를 최소 5일간 안 본다는 기쁨이 해방감을 선물해 준 것 같기도 하고!! 야호~